청민 박철언 시인 제8 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 제8 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 2026.08.11
□
이 글은 청민 박철언 시인 제8 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
해설 전문입니다.

■
권력의 언어를 지나 생명의 언어에 이르다
― 청민 박철언 시인 제8 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한 사람의 시집은 한 사람의 생애를 압축한 정신의 지도이다.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삶을 살아야 한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며,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문학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얻은 명예를 기록하지 않고, 세월을 통과하며 영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기록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제8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집은 일흔한 편의 시를 모아 놓은 작품집이 아니라, 한 시대를 치열하게 통과한 한 인간이 마침내 자신의 내면으로 귀향하는 기록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한 사람의 시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국가와 민족, 역사와 현실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박철언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굵직한 이력이 따라다닌다. 법조인, 정치가, 장관, 공직자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함께 기억된다. 수많은 갈등과 선택의 중심에 서 있었고, 시대의 방향을 고민하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했던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삶은 필연적으로 긴장과 책임을 동반하며, 때로는 인간의 마음을 메마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시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역사도 아니고, 자신의 공적도 아니다. 바람 한 줄기, 겨울나무 한 그루, 낙엽 한 장, 햇살 한 줌에서 그의 시는 다시 숨을 쉰다. 오래도록 권력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이 생명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인의 가장 큰 변화를 만난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이 낮은 곳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순간, 정치가는 비로소 시인이 된다.
하여, 《그대 조금만 천천히》 는 자연시집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이 시집에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계절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이며, 강물은 물이 아니라 시대의 상처를 품고 흐르는 공동체의 기억이다. 그는 꽃을 노래하면서 인간을 말하고, 겨울을 노래하면서 비움을 말하며, 바람을 노래하면서 자유를 말한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중심축은 제목 속에 이미 드러나 있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기다림의 표현이 아니다. 오늘의 시대를 향한 조용한 성찰이며,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늘 더 빨리 가기를 원한다.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빨리 인정받고, 더 빨리 정상에 오르려 한다. 속도가 능력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시인은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먼저 멈추라고 말한다. 자신의 영혼이 맑아질 때까지 서두르지 말라고 권한다. 사랑도, 성공도, 문학도 모두 인간이 먼저 사람다워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는 사실을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러한 사유는 표제시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을 끝에 서서」에서는 ‘천천히’가 삶을 돌아보는 자세로 깊어지고, 「한겨울의 자화상」 에서는 욕망을 덜어내는 무소유의 철학으로 성숙한다. 「감사할 일 많아 행복합니다」에서는 소유의 기쁨보다 존재의 감사로 확장되며, 「창살 너머 시詩의 날개」 에 이르면 삶의 상처마저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정신의 자유에 이른다. 서로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사유가 점차 깊어지고 넓어지는 과정이다. 작은 샘물이 골짜기를 지나 강이 되고, 마침내 바다를 이루듯 이 시집의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정신을 향해 흘러간다.
이 점에서 박철언 시인의 시는 사건을 노래하지 않는다. 인간의 성숙을 노래한다. 자연을 노래하지 않는다.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다시 세운다.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를 통과한 인간의 양심을 기록한다. 그의 시는 설명보다 성찰을 선택하고, 주장보다 사유를 선택하며, 화려한 수사보다 오래 숙성된 침묵의 힘을 믿는다. 그 침묵은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이며, 오래 걸어온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목소리이다.
이 시집을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로만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만 세는 일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 시집은 한 권의 유기체로 읽혀야 한다. 작품은 각각의 꽃이 아니라 하나의 나무를 이루는 가지이며, 여덟 개의 부는 독립된 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이 깊어지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이 평론 역시 개별 작품의 감상에 머물지 않고, 작품과 작품 사이를 흐르는 시인의 정신을 따라가고자 한다. 독자는 시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를 통해 한 인간이 도달한 삶의 철학과 문학의 깊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 는 늦게 피는 꽃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 견딘 나무가 끝내 보여주는 나이테의 이야기이다. 그 나이테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 사람의 시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인간이 어떻게 문학으로 자기 생을 완성해 가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용한 여정은 어느새 우리 자신의 삶에도 같은 질문 하나를 남긴다.
지금 우리는 너무 빠르게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Ⅱ. 천천히 오는 사람의 철학
― 비움에서 성숙으로, 성숙에서 자유로
청민 박철언의 시를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호흡’이다. 그의 시는 독자를 서둘러 감동시키려 하지 않는다. 강한 비유나 현란한 수사로 시선을 붙잡지도 않는다. 외려 한 걸음 물러서서 독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도록 기다린다. 이 기다림이야말로 청민 시학의 첫 번째 미학이다.
오늘의 시대는 모든 것을 빠르게 요구한다.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빨리 성공하며, 더 빨리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속도는 능력이 되었고, 경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목적지에는 빨리 도착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늦게 도착하는 존재가 되었다. 청민의 시는 바로 이 시대적 조급함에 대한 조용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표제작 「그대 조금만 천천히」는 단순한 연가가 아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노래처럼 읽히지만, 그 깊은 층위에서는 인간 존재를 향한 수행의 언어이다.
가랑비 소리 없이 서서히 스며들듯
그대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오소서
밤하늘 별들의 속삭임처럼
고요한 꽃 향으로 내게 오소서
지나온 시간 속 어두운 허물들
하나하나 남김없이 옷 벗어
내 영혼 샘물처럼 맑아질 때 오소서
남아있는 시간의 수레 위
흔들림 없는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 때
설레는 가슴으로 살포시 오소서
내 허물 벗겨져 새살이 돋고
내 영혼에 새 움이 돋아나면
그대 내 가슴에 영원히 품으리
― 시 「그대 조금만 천천히」 전문
시인은 “내 영혼 샘물처럼 맑아질 때 오소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대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진실한 사랑도, 참된 문학도, 온전한 삶도 결국 맑아진 영혼 위에만 머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는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을 비우려 한다. 이 한 편의 시는 시집 전체를 떠받치는 정신적 기둥이 된다.
이러한 사유는 「노을 끝에 서서」 에 이르면 한층 깊어진다.
붉게 물든 노을 끝에 서서
굽이굽이 살아온 길 되돌아본다
꺾임 없던 용기
차가운 지성
뜨거운 열정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숱한 고난과 도전
이제 지치고 노곤해진 어깨를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해 주고 싶은
황혼의 나그네
길지 않게 남은 시간 서두르지 않고
세상과 조화롭게 동행하면서
소외된 주변에 사랑을 베풀리라
평온한 숨결로도 가슴 찡한 詩 쓰면서
온기 채워 아름답게 마무리하리라
― 시 「노을 끝에 서서」 전문
표제시에서 ‘천천히’가 내면을 정화하는 시간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삶을 성찰하는 태도로 확장된다. 노을은 끝이 아니다. 하루 가운데 가장 찬란한 순간이 저녁이듯, 인생도 가장 깊은 빛은 오래 살아온 시간에서 나온다. 시인은 지나온 세월을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다. “소외된 주변에 사랑을 베풀리라 / 평온한 숨결로도 가슴 찡한 시 쓰면서 / 온기 채워 아름답게 마무리하리라.” 이 고백은 생애의 결산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향한 새로운 다짐이다.
여기서 청민의 시는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성취인가.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사랑과 성찰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먼저 낮추는 사랑, 삶을 끝없이 돌아보는 성찰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나 밖으로 향하기 전에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내면으로의 여정은 「한겨울의 자화상」에서 더욱 선명한 철학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겨울, 나목에서 나를 본다
얼마나 벗을 수 있는가
소유와 집착에서 무소유와 자유로
벗고 싶은 건 무엇이었나
담쟁이처럼 기어오르는 욕망도
비 갠 뒤 무성해지는 잡초 같은 망상도
글과 말로 받은 상처들도
얼마만큼 벗고 비울 수 있는가
비워 내야 보이는 것들
가지와 둥치가 선명한 채
무심한 듯 서 있는 나목
무소유의 끝이 고요히 내려앉은
사계 지나온 나이테 한 바퀴
비웠을 때 비로소 깊숙이 보인다
계절마다 때 묻고 흐려진 영혼
말 한 조각마저도 비우고 싶은
한겨울 길목의 겨울나무로 선 나
― 시 「한겨울의 자화상」 전문
겨울은 청민에게 죽음의 계절이 아니다. 모든 잎을 내려놓은 나무가 비로소 자신의 나이테를 드러내듯, 인간도 욕망을 벗겨낼 때 비로소 본래의 얼굴을 만난다. 그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본다. 명예도, 집착도, 상처도, 말의 무게도 하나씩 벗겨낸 자리에서 남는 것은 고요한 존재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편의 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하나의 사유를 조금씩 깊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가 영혼을 맑게 하는 출발이라면, 「노을 끝에 서서」는 지나온 생애를 사랑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며, 「한겨울의 자화상」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뒤 욕망을 비워 자유에 이르는 완성의 단계이다. 작품은 셋이지만 정신은 하나이다.
이 지점에서 청민의 시는 동양적 사유와도 맞닿는다. 유교의 성찰, 불교의 비움, 노장의 자연스러움이 그의 시 속에서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 그렇다고 관념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그는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계절을 보여주고, 강물을 보여주고, 나무를 보여줄 뿐이다. 철학은 풍경 속에 숨어 있고, 독자는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청민의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인격이다. 겨울은 차가움이 아니라 절제이고, 노을은 황혼이 아니라 화해이며, 느린 걸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존재의 품격이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인간을 다시 세우는 시인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오늘의 문학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현대시는 종종 새로운 형식과 낯선 이미지에 몰두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청민의 시는 특별한 실험보다 오래 숙성된 삶을 믿는다. 기교보다 진정성을, 현란한 언어보다 절제된 언어를 선택한다. 그것은 오래 걸어온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문학의 길이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 에서 말하는 ‘천천히’는 시간의 속도가 아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속도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깊을수록 아름답다. 청민은 그 사실을 자신의 생애로 증명하고, 자신의 시로 다시 증언한다. 그의 시가 잔잔한 울림을 오래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독자에게 서둘러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삶을 천천히 다시 살아보라고 권하는 한 사람의 조용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Ⅲ. 사람을 품는 시의 온도
― 사랑을 넘어 관계의 윤리로
청민 박철언의 시를 계속 읽어가면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앞에서는 자신을 비우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타인을 품는 사람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인간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 살아온 사람답게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때 그의 시는 사랑을 노래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랑보다 더 오래 남는 ‘관계의 품격’을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 현대인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관계를 가장 어려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소통은 넘쳐나는데 이해는 부족하고, 연결은 많아졌는데 신뢰는 얕아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정작 마음은 더욱 멀어지는 역설적인 시대이다. 청민은 이러한 시대를 향해 거창한 처방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관계를 다시 사람의 온도로 되돌려 놓는다.
그 출발점이 「진정 아름다운 관계는」이다.
관계를 진단해 본다
숨 쉴 공간까지 좁혀들어
집착으로 너무 피곤해진 관계
소행성처럼 떨어진 채
몇십 년째 원심력이 자리해
멀리 원 밖으로만 도는 사람들
급속도로 가까이 다가와
앞에서는 감언이설로 녹이지만
뒷담화 무성하게 심어두고서
끝내 등 돌리고 마는 그런 유형
눈, 비 오는 날 그리움이 키를 넘어도
뒷모습으로 멀어져만 가다가
어떠한 실루엣도 남기지 않고
어느 밤의 꿈처럼 소멸되어 버리는 인연
서로의 안부가 늘 궁금하면서도
딱 그만큼의 숨은 거리로
서로에게 자유로움을 마련해 주는 게
진정 아름다운 관계 아닐까
― 시 「진정 아름다운 관계는」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은 관계를 거리의 문제로 해석한다. 너무 가까우면 집착이 되고, 너무 멀어지면 무관심이 된다. 아름다운 관계는 상대를 붙잡는 힘이 아니라, 상대가 자유롭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얻은 삶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인간관계론이 아니다. 시인은 관계를 하나의 생명처럼 바라본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억지로 움켜쥘수록 시들고,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만날 때 오래 살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신뢰이며, 가까움은 간섭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사실을 그는 담담한 언어로 일깨운다.
이 사유는 자연스럽게 「깊어질수록」으로 이어진다.
낙엽도 떠나버린 빈 들녘
지상의 체온이 식어가는 계절
연둣빛 이파리로 돋아나
단풍처럼 익어가던 첫사랑
함께했던 황홀한 떨림이
잎새마다 갈바람으로 불어온 날
깊어질수록
서로에게 더 내주고 싶은 마음자리
비워낼수록 차오르는 그대의 숨결
숨길 수 없어 매번 들키나 봅니다
바람 소리 사납게 흔드는 밤에도
꺼지지 않는 그리움 한 가닥
고독한 가슴 속 빈터로 달려가
심장의 주파수끼리 만나면
순간 감전되어 꿈속을 걷던 첫사랑
매서운 겨울은 다가오지만
서로의 체온은 뜨거워만 갑니다
가시나무새의 찢긴 울음이 고여
심장 속에 아픈 응어리로 자랄지라도
그리움의 온도는 높아만 갑니다
그리하여 끝내 깊어만 가는 우리
― 시 「깊어질수록」 전문
겉으로 보면 사랑시이다. 첫사랑의 기억과 그리움이 중심을 이루는 작품처럼 읽힌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시는 사랑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을 말한다.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식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청민은 깊어질수록 더 많이 내어주고 싶어지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상대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용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감정보다 인격에 가깝다.
이 두 작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여 있다.
「진정 아름다운 관계는」이 관계의 원칙을 말한다면, 「깊어질수록」은 그 원칙이 사랑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삶이다. 작품은 다르지만 흐르는 정신은 하나이다.
그러나 청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관계는 언제나 아름답게만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래 살아온 사람일수록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사랑의 환상에 머물지 않고 상처의 현실까지 품어낸다.
그 지점에서 등장하는 작품이 「말의 사금파리」 이다.
그대에게 함부로 던진 내 말
가슴에 사금파리로 박혀
숨 쉴 때마다 찔렀을 조각들
파편마다 밤하늘에 하얗게 떠돌다가
꿈속에도 켜켜이 파고 들었을까
금이 간 내 꿈마저 마디마디 아프구나
내 말의 넝쿨 한없이 자라나서
그대 마음 칭칭 동여맬 줄이야
내 마음도 무겁게 주저앉으니
하늘도 회색빛으로 우울하다
내 마음의 창 그대여
사금파리 내 가슴으로 되돌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더욱 날 찌르는구나
창 열고 하늘에 사금파리 산산이 흩뿌려
붉은 상흔 남김없이 은하수로 씻고서
하나 된 우리 사랑 다시 푸르게 날아봐요
아픔 털어낸 꿈의 날개 힘차게 펴고서
― 시 「말의 사금파리」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은 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큰 원인을 ‘말’에서 찾는다. 말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가슴에 오래 박히는 사금파리라는 것이다.
이 비유는 매우 인상적이다. 칼은 한 번 상처를 남기지만 말은 수없이 되살아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잊어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그는 말을 언어가 아니라 책임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청민의 시는 윤리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속에서 오래 아프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들려준다.
이러한 성찰은 「오해에서 이별까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쁜 숨소리까지 들렸는데
언젠가부터 말이 빗나가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으니
둘 사이의 강물도 역류합니다
강물의 속울음에 귀 열지 않으니
마음의 길이 자꾸 하늘로만 열려
푸른 하늘에 일기를 쓰곤 합니다
닿지 못해 멍든 마음들
금가기 시작하니 등만 먼저 보여
서로 밀어낸 양극은 멀어져만 갑니다
사랑은 달콤한 말에서 왔지만
이별은 더 짧아진
물기 잃은 말로부터 온다는 걸
우리 이제는
하늘 일기장에서 읽어야 할 때입니다
― 시 「오해에서 이별까지」 전문
청민은 이별의 원인을 거대한 사건에서 찾지 않는다. 마음이 멀어지는 과정은 언제나 아주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말이 조금 비껴가고, 침묵이 길어지고, 서로의 숨결을 듣지 못하는 순간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시인은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오해할 수 있고, 누구나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누구나 후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분노보다 연민이 많고, 심판보다 이해가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민의 인간관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모두가 미완성의 존재이며,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관계론은 결국 용서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용서를 말할 수 있다. 상처를 모르는 사람의 용서는 관념이지만, 상처를 견딘 사람의 용서는 지혜가 된다.
청민의 시가 따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는 사람을 심판하는 언어가 없다. 사람을 품으려는 언어만 있다. 상대를 이기려는 문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려는 문장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관계의 기술은 넘쳐나지만 관계의 철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화법은 가르치지만 이해하는 법은 잊고, 소통을 외치지만 경청을 배우지 않는다. 청민은 시를 통해 다시 가장 오래된 진실 하나를 들려준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체온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 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관계는 기술이 아니라 인격이다. 그의 시가 말하는 사람의 온도는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오래 식지 않는 따뜻함이다.
바로 그 따뜻함이 이 시집을 단순한 서정시집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믿게 만드는 인간학의 기록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Ⅳ. 역사를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
― 시대를 증언하는 서정, 공동체를 품는 양심
청민 박철언의 시세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축이 있다. 그것은 역사의식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의식은 흔히 말하는 역사시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역사를 이념으로 재단하지 않고, 사건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역사를 정치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를 살아낸 한 인간의 양심으로 바라본다.
이 점은 청민 시의 가장 큰 개성이며, 동시에 다른 서정시인들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시대를 바라본다면, 청민은 시대의 한복판을 통과한 뒤 다시 인간의 내면으로 돌아온다. 방향은 정반대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체험이 있다.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며, 주장보다 성찰이 앞선다.
이러한 특징은 「한강의 아픈 흐름」에서 먼저 드러난다.
황톳빛으로 뒤척이는 한강의 아침
밤새 불어난 물속에는
갖가지 울음이 담겨 있다
흙을 잡아 끝까지 품지 못한
숲속 작은 뿌리들의 울음이 담겨 있다
터전을 놓친 작은 생명들의
혼절해 버린 눈물도 담겨 있다
한순간에 가족 잃어
삼켜도 자꾸 차오르는
통곡이 담겨 있다
수많은 슬픔을 품고
소리 없이 기도하며
서서히 서해로 흐르는 한강
생태계를 송두리째 삼킨 장맛비의 뒷모습
묵묵히 실어 나르는 한강의 아픔이
싯누렇게 출렁거린다
― 시 「한강의 아픈 흐름」 전문
이 작품에서 한강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시인은 장맛비로 황톳빛이 된 강물을 바라보면서 흙탕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 있는 수많은 생명의 울음을 읽는다. 떠내려간 뿌리, 삶의 터전을 잃은 작은 생명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이 한강을 따라 흘러간다.
강은 말이 없다. 그러나 청민은 그 침묵 속에서 시대의 비명을 듣는다. 이것이 그의 시가 가진 특징이다. 그는 자연을 묘사하지 않는다. 자연에 새겨진 인간의 상처를 읽는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구의 안부安否」로 이어진다.
지구 곳곳의 안부가 걱정된다
대서양과 카리브해 바라보는 베네수엘라
독재와 인권 탄압, 마약 밀매, 국제폭력조직이라지만
무력으로 전격 체포·압송된 한 나라의 대통령
거대하게 입 벌린 초강대국의 위세인가
미러중, 유럽 사이에 끼어
북극권의 새로운 해상 무역로로 진화한
덴마아크의 자치령 그린란드
눈 뜨지 않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출렁이는 곳
국가안보를 구실로
강제 매입이라는 검은 꿈이 그물처럼 입 벌린다
평화와 안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대국의 솟구치는 식욕에 목덜미 물리면
애완견으로 꼬리 내리는 게 힘의 논리인가
패권의 위력에 약소국의 안부가 위태롭다
러시아 때문에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이
중국 때문에 타이완이
인도 때문에 파키스탄이
불안하게 꼬리 내려야 하니
동맹의 딜레마 속에 불안해지는 한국의 안위安危
산업화 세력으로 경제발전 이루고
민주화 세력으로 인간 존엄 찾았으니
서로 싸울 게 아니라
이젠 동반자로 함께 나아갈 때
더 멀리 더 힘차게
새로운 대항해로 빛날 수 있을 텐데
인권이 존중받고
공인된 국제법 질서가 제대로 지켜져
어디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구가 되었으면
― 시 「지구의 안부安否」 전문
한강이라는 한 나라의 강은 어느새 지구라는 공동의 삶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만과 중국, 중동의 갈등과 강대국의 패권 경쟁을 바라보며 오늘의 국제질서를 성찰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국제정치 자체가 아니다. 그 모든 갈등 속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이다. 강대국의 욕망은 국경을 흔들지만, 그 피해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삶으로 돌아온다.
청민은 이 거대한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끝내 인간을 놓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시는 정치가 아니라 인문학이 된다.
국제정세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의 시를 움직이는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그 사유는 다시 「2026 지구의 현주소」에서 더욱 넓어진다.
호르무즈의 목 움켜쥐고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권력의 화살표
날마다 상공으로 치솟는 야욕들
날마다 해저로 곤두박질치는 약속들
이란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평화의 이름으로 얽혀 숨어든 전쟁과 갈등
이권과 눈치 보기로 어지러운 지구
봉쇄냐 해제냐 밀고 당기는 줄 위
오늘도 둥글게 돌아야 하는
파랗게 질린 지구의 호흡
우주 속 작고 푸른 별 지구
동북아의 이토록 좁은 분단국이지만
10위권 경제에 K-문화예술로 우뚝 서서
자유민주평화의 별자리 지켜 더욱 빛났으면
신의와 진실이 사라진 듯한 지구별에
정의의 이름으로 평화가 뿌리내려
모두가 자유롭고 따뜻해졌으면
지구의 현주소 어디쯤일까
― 시 「지구의 현주소」 전문
여기서 시인은 세계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바라본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유럽, 중동과 동북아를 각각의 세력권으로 보지 않는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읽는다.
세계는 점점 가까워졌지만 마음은 더욱 멀어졌다. 경제는 연결되었지만 신뢰는 분열되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평화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청민은 이러한 시대를 향해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는다.
외려 마지막에 조용히 희망을 남긴다. 정의가 살아 있고, 국제질서가 존중되며,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소망한다.
그 희망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평생 국가의 현실을 몸으로 겪어온 사람이기에 더욱 절실한 기도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시가 왜 특별한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는 국가를 사랑하지만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평화를 말하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역사를 기억하지만 과거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역사관은 「역사의 분수령에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지평을 연」 이라는 추모시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중,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기득권 다 버리고 국민 요구 모두를 겸허하게 수용한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가는 징검다리에서
자유화의 평화로운 혁명을 이루어
나라 곳곳을 환희로 흔들었던 님이시여
7.7 대통령 특별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라는
대북포용정책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의 쾌거로
민족 분단사에 새 이정표 세워
평화통일의 꿈을 열어준 님이시여
분단의 아픔 딛고 하나 된 위력이
세계 창공에 힘차게 펄럭이던 시대
세계를 제패한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
세계 8강 진출로 치솟은 청소년축구 단일팀
과감한 북방정책으로 꽉 닫혔던
39개 공산권과 외교관계 수립하여 반쪽외교로부터
전방위 자주 세계 외교 시대의 새 지평 여니
어떠한 나라에도 자유롭게 여행하고
경제활동 문화교류 할 수 있게 하신 님
88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로 국가 위상 드높이고
공원마다 강변마다 산기슭마다
생활체육시설의 푸른 맥박 뛰니
엘리트 체육에서 국민 체육 시대로
온 국민의 건강 단단하게 지켜낸 님이시여
2백만호 신도시 건설로 서민주택난 챙기고
국민연금, 최저임금, 의료보험제도 도입과 확대로
민생을 두루 깊이 살펴 국민복지의 기틀을 다지신 님
영종도공항, KTX. 예술의전당 서해안고속도로 건설로
미래지향적 인프라 굳건하게 확충하신 님
청소년기본법을 제정하여
모든 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하도록 지원해서
훌륭한 새 세대로 키우려 애쓰신 님이시여
격동 변전하는 세계사 격류 속에
천파만파 고난에 도전하여
한민족 전성시대를 열어가던
님의 혜안과 추진력
모든 권위 내려놓고 경청하고 인내하며 대화하여
역동적 통합력을 발휘하시던 님
전우가를 작사 작곡하고 베사메무쵸를 즐겨 부르시던 님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유난히 따뜻하던 님이시여
만년에 지병으로 오래 고생하시다가 89세에 귀천하셨으니
이젠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복록 누리소서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한민족의 통일 번영 새 시대 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시 「역사의 분수령에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지평을 연 - 故 노태우 대통령 추모詩」 전문
이 작품은 특정 인물을 기리는 시이지만, 실상은 한 시대를 성찰하는 역사적 에세이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인물을 미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한 시대가 남긴 공과를 바라보며 역사 속에서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 있다. 청민 시인은 역사 속 인물을 영웅으로 신격화하지 않는다.
역사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며, 인간은 언제나 시대의 한계 속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작품 전반에 깔아 놓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찬양보다 성찰에 가깝다. 판단보다 이해를 선택하고, 증오보다 화해를 지향한다. 이것은 평생 공적 영역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의 품격이다.
여기에서 청민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이 드러난다. 그는 개인의 슬픔을 사회의 슬픔과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의 아픔도 시대의 아픔으로 읽고, 한 사람의 눈물도 공동체의 눈물로 읽는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나’보다 ‘우리’가 많다. 개인의 서정을 넘어 공동체의 서정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는 오랫동안 개인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데 큰 성과를 이루어 왔다.
청민의 시는 여기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탠다.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이 서정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히려 시대를 품은 서정이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청민에게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내일을 향한 책임이다. 그는 역사를 기록하는 시인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도 인간을 끝내 잃지 않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국제정세보다 인간이 남고, 정치보다 양심이 남으며, 사건보다 생명이 남는다.
바로 이 점에서 《그대 조금만 천천히》 는 개인의 시집을 넘어 공동체를 향한 윤리적 성찰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청민 박철언이 자신의 생애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도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적 성취라 할 수 있다.
Ⅴ. 삶이 끝내 문학이 되는 순간
― 존재의 귀향, 시인이라는 마지막 이름
청민 박철언의 제8시집을 끝까지 읽고 나면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왜 그는 인생의 황혼에서 시를 선택했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왜 그의 삶은 결국 문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은 이 시집을 이해하는 마지막 열쇠이기도 하다. 문학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다만 살아낸 삶을 다시 해석하게 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직업도 맡고, 책임도 맡고, 시대도 맡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모든 역할을 내려놓으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뿐이다. 청민의 시는 바로 그 존재를 찾아가는 긴 귀향의 기록이다.
그 귀향은 「감사할 일 많아 행복합니다」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수 있어
거리나 공원을 걸을 수 있어
하루 세 끼 식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바람의 정겨운 속삭임에
태양의 따스한 손길에
달빛과 별빛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영혼의 울림이 문 두드려
공감을 주는 한 편의 詩
여전히 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詩人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과욕의 무게 덜어내고 바라보면
감사할 일 들풀처럼 많은 인생길
그리하여 더없이 행복합니다
― 시 「감사할 일 많아 행복합니다」 전문
젊은 날의 행복은 대개 더 많이 이루는 데서 시작된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공, 더 많은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오래 살아온 사람은 행복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 햇살을 느끼고, 바람을 맞으며,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청민은 이러한 평범한 일상 앞에서 깊이 머리 숙인다.
이 작품은 감사를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보여주는 시이다. 감사는 현실을 모르는 낙관이 아니다. 수많은 상실을 통과한 사람이 마지막에 얻게 되는 가장 성숙한 지혜이다.
이러한 감사의 철학은 「책 속에 보이는 길」 에서 더욱 넓어진다.
유년기의 그림책 만화책부터 임종 무렵까지
수백, 수천의 갖가지 책으로 열리는 길
역사의 물줄기 따라 생각을 세워주는 책
성장기에도 일터에서도 해외에서도
문학, 역사, 철학, 신화, 기상학으로도
인생길 이끌어 주는 유난히 밝은 북극성
그 유장한 흐름 속 시詩의 길도 가르쳐주는 책
그 길 따라 반짝 영성이 깨어나고
그 길 따라 감성의 파장을 열어
그 길 따라 이성으로 뿌리내리는 시
내 삶의 길도 나라의 길도 열어주는
책 속에 잠들어 있는 길
책장 넘길 때마다
고요히 엎드린 여러 갈래 희망이
오늘따라 또렷이 보인다
― 시 「책 속에 보이는 길」 전문
청민에게 책은 지식을 쌓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 그는 문학과 역사, 철학과 신화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책은 사람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깊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그의 독서는 축적이 아니라 성찰이다. 배움은 경쟁력이 아니라 인격이 된다. 문학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된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시는 자연스럽게 문학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인詩人이라는 호칭」 이 놓여 있다.
대부분이 시인인 어느 문학회 단톡방엔
시인이란 호칭이 거의 없다
한결같이 존경받는
회장님 교수님 이사장님 박사님만
무더기로 층층이 모여 산다
흔해 빠진 호칭 대신
시인이나 평론가가 드물게 등장할 때
제자리 찾은 담백한 호칭 때문인지
수식어 다 뺀 채로도 스스로 빛나는 호칭
‘존경하는’이라는 거품 빼도
이미 기품 있는 당당한 이름
그 냥 시 인
그 이상 뭘 더 높일까
몇십 년을 과분한 호칭으로 살았으니
이젠 어떤 옷도 걸치고 싶지 않다
몸 안으로 바람도 햇살도 마음대로 드나들어
언제든 시詩도 되었다가 시인도 되는
그냥 시인이 좋은 아침이다
― 시 「시인詩人이라는 호칭」 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박철언이라는 인간이 끝내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수많은 이름을 가졌다. 법조인, 정치가, 장관, 공직자….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그냥 시인이 좋은 아침이다.” 이 한 문장은 놀라울 만큼 담백하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는 한 인간의 생애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 많은 사람은 높은 자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청민은 반대로 가장 단순한 이름 하나를 선택한다. ‘시인.’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겸손의 표현만이 아니다. 삶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언어이다.
이 작품을 읽는 순간 우리는 앞에서 읽었던 여러 작품이 하나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에서 영혼을 맑게 하려 했던 사람. 「노을 끝에 서서」에서 삶을 돌아보던 사람. 「한겨울의 자화상」에서 욕망을 벗어 던지던 사람. 「감사할 일 많아 행복합니다」에서 존재 자체를 축복하던 사람.
그 모든 여정은 결국 ‘시인’이라는 이름 하나를 향해 흘러왔던 것이다. 그러나 청민의 문학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더 깊어진다. 삶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았다. 상처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으며, 견디기 어려운 시간도 있었다.
그러한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이 「창살 너머 시詩의 날개」이다.
이름을 지워버린 숫자 4077번
흰색 죄수복에 묶인 482일
하루 딱 40분 하늘 보며 땅 밟는 운동시간
쇠창살에 갇혀 금이 간 그해 봄
창살 밖 민들레로 피어나
바람 타고 흰 씨앗으로 날아오른 詩
핏빛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던
억울한 심정이 詩로 압축된 엽서 세 장
주인 대신 풀려나 언론에 보도 되니
원로 시인들 추천으로
시인이라는 푸른 모자 쓰게 되었어
죄 없는 옥살이와 등 돌린 배신감
권력자의 칼춤에 찔린 무력감
출세욕, 명예욕에 눈먼 검사와 용기 없는 판사
진실을 외면해 버린 눈 감은 언론
긴 밤을 보내도 새벽은 여전히 멀어
겹겹의 상처가 함께 수감 되었던 잿빛 겨울
국내외 곳곳에서
초등학생부터 벙어리 주부, 청소부까지
걱정과 격려로 이어지던 글의 힘
5,000여 통의 편지와 2,000여 권의 책
답장으로 보낸 300여 통의 봉함엽서
성원과 기도, 면회를 왔던 못 잊을 사람들
그 사연들 담아 당당하게 일어선 책
『4077 면회 왔습니다』
정치 보복의 마지막 제물이 나이길 바라면서
솟구치던 분노와 통한은 감옥에 묻고서
가려진 진실과 시렸던 시류時流
껍질 벗긴 글의 날개 펼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어
이젠 창살도 정치도 떠난 삶
어떤 시공도 자유로운 詩의 날개 달아
푸른 하늘로 새처럼 날려 보낸다
갖가지 변곡점 모두 넘어
삶에게 길 물으니 詩라고 답했고
시에게 길 물으니 삶이라 답했어
마침내 열린 하늘과 땅과 삶과 시
― 시 「창살 너머 시詩의 날개」 전문
이 작품은 단순한 회고시가 아니다. 고통을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고통이 어떻게 문학으로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억울함은 분노가 될 수도 있었다. 상처는 복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청민은 그 시간을 시로 견뎠다. 여기서 문학은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아니다.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시는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상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치유의 문학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민 문학의 가장 깊은 본질과 마주한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해 산 사람이 아니다. 살아낸 삶이 끝내 시가 된 사람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경험을 소재로 사용하는 시인도 있다. 그러나 청민 시인은 경험을 문학으로 정제한다.
시간을 통찰로 바꾸고, 기억을 철학으로 바꾸며, 상처를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그의 시 속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대 조금만 천천히》 는 단순한 여덟 번째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마침내 하나의 문학으로 완성되는 기록이다. 삶이 먼저 있었고 문학이 뒤따랐다. 권력이 먼저 있었고 시가 마지막에 남았다. 역사가 먼저 있었고 인간이 끝내 중심에 섰다. 그래서 이 시집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작품의 제목보다 한 사람의 삶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박철언은 자신의 생애를 설명하기 위해 시를 쓰지 않았다. 시를 통해 자신의 생애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문학은 회고가 아니라 귀향이며, 기록이 아니라 성숙이다.
문학은 인생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완성하는 가장 깊은 언어라는 사실을, 청민 박철언은 이 시집을 통해 조용하지만 힘 있게 증명하고 있다.
Ⅵ. 맺음말
― 《그대 조금만 천천히》의 문학사적 의미
시는 한 인간의 마지막 이력이다
좋은 시집은 읽는 동안보다 덮은 뒤에 더 오래 생각난다. 작품 몇 편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이 마음속에 남는다. 청민 박철언의 제8시집 《그대 조금만 천천히》 가 바로 그러한 시집이다. 이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계절의 풍경보다 한 인간의 삶을 떠올리게 되고, 아름다운 문장보다 오래 숙성된 인품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 빨리 오르고, 더 많이 소유하며, 더 크게 성공하는 것이 삶의 가치처럼 여겨진다. 문학 역시 새로운 형식과 강렬한 이미지, 낯선 언어를 경쟁하듯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시대에 청민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더 느리게 걷고, 더 깊이 성찰하며, 더 많이 비워내는 삶을 시의 중심에 세운다. 이것은 단순한 창작 태도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이며, 시대를 향한 조용한 제안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은 자연도, 사랑도, 역사도 아니다. 그것들을 하나로 꿰뚫는 인간의 성숙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사랑은 존재를 완성하는 과정이 되며, 역사는 양심을 시험하는 공간이 된다. 그 모든 길은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더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민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를 선택한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철학을 앞세우지 않으며, 독자를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함께 사유하도록 이끈다. 그의 언어는 큰 목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오래된 우물처럼 깊은 침묵 속에서 천천히 울림을 만든다. 그 울림은 시를 읽는 순간보다 삶을 살아가는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오르는 힘을 지닌다.
무엇보다 이 시집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법조인과 정치가, 장관과 공직자라는 사회적 이름은 시대와 함께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은 그보다 더 오래 남는다. 문학은 직책을 기억하지 않고 정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박철언은 사회적 성공을 시로 장식하지 않았다. 외려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했고, 지나온 시간을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사,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책임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이 먼저 있었고, 시는 그 삶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마지막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시는 오랫동안 개인의 내면과 언어의 실험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왔다. 그 흐름 속에서 청민의 시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인의 서정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품으면서도, 시대를 말하면서도 서정을 잃지 않는 길이다. 자연과 역사, 사랑과 성찰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인간의 품격을 묻는 그의 시세계는 한국 서정시의 외연을 넓히는 의미 있는 성취로 읽을 수 있다.
《그대 조금만 천천히》 는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는 시집이 아니다. 대신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깊이를 담고 있다. 그 깊이는 독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며, 소유가 아니라 비움이라는 사실을.
청민 박철언은 이 시집에서 ‘천천히’라는 한마디를 통해 인생 전체를 다시 정의한다. 그것은 걸음의 속도를 늦추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삶의 속도를 조율하라는 권유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한 권의 시집을 넘어, 한 인간이 시대를 통과하며 끝내 도달한 정신의 자서전으로 읽힌다.
문학은 마지막에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이름만 남겨 준다. 청민 박철언에게 그 이름은 정치가도, 법조인도, 장관도 아니다. 시인. 그 두 글자가 그의 긴 생애를 가장 깊고도 아름답게 설명하는 마지막 이력이다.
―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