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 공병영 시인의 「비움이 남긴 것」 에 나타난 마음의 주권과 감산減算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비운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 공병영 시인의 「비움이 남긴 것」 에 나타난 마음의 주권과 감산減算의 미학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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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이 남긴 것
시인 공병영
비우고 나니
모든 게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조용히 들여다보니
남은 게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숨결,
덜 복잡한 생각.
원망 대신 피어난 감사.
두려움 대신 자리잡은 평화.
무언가를 얻기보다
잃지 않으려 안간힘 썼던 시간들.
그 모든 애씀 위에
비움이 남긴 선물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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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 공병영 시인의 「비움이 남긴 것」 에 나타난 마음의 주권과 감산減算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사람의 생애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내려가야 비로소 열리는 방이 있다.
세상은 대개 앞의 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더 높은 자리, 더 빛나는 명함, 더 많은 성취를 향해 사람은 계단을 오른다. 어느 높이에 이르면 뜻밖의 역설과 마주한다. 그토록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는데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비어 있는 의자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공병영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은 일찍 삶의 벼랑을 보았다. 행정고시의 문을 거듭 두드렸고 수차례 낙방의 시간을 통과한 끝에 공직에 들어섰다. 대통령비서실과 교육부, 서울대학교 등 교육행정의 중심을 거쳤으며 대학 총장의 자리까지 이르렀다.
한 사람의 이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성공의 생애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그의 시가 향하는 곳은 정상의 전망대가 아니다.
외려 자기 마음의 지하실이다.
승진이라는 계단, 보직이라는 외피, 자존심과 체면, 타인의 평가와 성공에 대한 집착을 하나씩 걷어내며 ‘나는 누구의 마음으로 살아왔는가’를 자기 생애 앞에 다시 놓는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마음공부’였다.
공병영에게 마음공부는 세상에서 물러나는 은둔의 기술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에 오래 빌려주었던 자기 마음의 주권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에 가깝다.
그 정신이 가장 간명하게 응축된 작품이 「비움이 남긴 것」이다.
이 작품을 단순한 명상시나 ‘욕심을 버리자’는 교훈시로 읽는다면 시가 품고 있는 생애의 깊이를 지나치게 된다.
이 시의 진짜 주인공은 비움이 아니다.
다 비운 뒤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은 한 사람이다.
Ⅱ. 가운뎃말
- 아홉 번 닫힌 문과 ‘감산減算’의 미학
― 얻는 생애에서 덜어내는 생애로
공병영의 시를 이해하려면 그의 실패를 작품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거듭된 고시 낙방은 단순한 시험 실패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날의 자존심이 깎이고, 자기 존재를 의심하며, 아침이 와도 마음속 밤이 쉽게 걷히지 않는 시간이었을 터이다.
그 긴 실패 끝에 그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문을 통과했다.
교육행정의 요직을 거쳤고 여러 책임 있는 자리에 섰다. 가진 것이 늘수록 뜻밖에 지켜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시 속의
“무언가를 얻기보다
잃지 않으려 안간힘 썼던 시간들.”
이라는 두 행은 특별한 무게를 얻는다.
젊은 날에는 얻기 위해 달린다.
어느 정도 얻은 뒤에는 삶의 방향이 슬며시 바뀐다.
자리
명예
평판
관계
자존심
그동안 쌓아 올린 사회적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힘을 쓴다.
성공이 자유를 줄 것이라 여겼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얻은 것의 경비원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시「비움이 남긴 것」은 바로 그 역설을 통과한 사람의 시다.
첫머리에서
“비우고 나니
모든 게 사라진 줄 알았다.”
라고 쓴다.
여기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이 들어 있다.
비웠는데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덜어냈는데 더 본질적인 것이 남는다.
이 작품의 미학을 ‘감산減算의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조각가가 돌에 무엇인가를 계속 붙여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며 그 안에 있던 얼굴을 드러내듯, 공병영의 시는 자기 삶에 달라붙어 있던 과잉을 하나씩 덜어낸다.
타인의 시선
원망
두려움
집착
체면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
그것들이 물러난 자리에 뜻밖에도 폐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남는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본체의 발견이 된다.
- ‘덜 복잡한 생각’에 숨어 있는 겸허
― 완전한 초월을 선언하지 않는 시
이 작품에서 특별히 귀하게 바라보는 표현은
“덜 복잡한 생각”
이다.
‘맑아진 생각’도 아니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마음’도 아니다.
시인은 겨우 한 글자,
‘덜’
을 놓았다.
그 한 글자가 이 작품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마음공부를 오래 했다고 인간의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망과 두려움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다시 흔들리고,
다시 화가 나며,
다시 무엇인가를 붙잡는다.
공병영은 자신을 성자의 자리로 밀어 올리지 않는다.
조금 가벼워졌고,
조금 덜 복잡해졌으며,
원망이 앉아 있던 자리에 감사가 자라기 시작했고,
두려움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평화가 조금 더 머무르게 되었다.
이 작은 이동이 중요하다.
‘덜’은 초라한 부사가 아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품은 겸허의 언어다.
이어지는
“원망 대신 피어난 감사.
두려움 대신 자리잡은 평화.”
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원망이 완전히 소멸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한 감정의 자리에 다른 감정이 들어온다.
사람의 마음은 빈방으로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원망을 억지로 몰아내는 것이 수행의 전부가 아니라, 그 빈 의자에 무엇을 앉힐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시인은 그 자리에 감사를 앉히고 평화를 들인다.
이 때문에 그의 비움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빈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가 들어올 방을 마련하는 일이다.
- 마지막에 남은 사람
― 직함을 모두 벗은 뒤 자기 곁에 앉다
작품의 가장 깊은 지점은 마지막에 있다.
“비움이 남긴 선물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비운 뒤 남은 것이 ‘깨달음’이라는 거대한 관념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남은 것은 자기 자신이다.
공직자인 나
총장인 나
아버지인 나
남편인 나
사회적 책임을 맡은 나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나
한 인간에게는 평생 수많은 이름표가 붙는다.
그 이름표들이 오래 쌓이면 어느 순간 역할이 사람을 가리고, 명함이 얼굴보다 먼저 보이기도 한다.
공병영의 비움은 그 이름표들을 하나씩 떼어내는 행위다.
그 끝에서 아무 수식어도 붙지 않은 한 사람이 나타난다.
더 눈여겨볼 말은 ‘앉아 있는’이다.
공병영의 전반기 삶은 끊임없는 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시험을 향해 달리고,
공직의 사다리를 오르고,
새로운 책임을 맡고,
또 다음 자리로 이동했다.
그런 사람이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멈춘다.
앉는다.
더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더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평생 앞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곁에 앉은 것이다.
이 장면에서 「비움이 남긴 것」은 단순한 마음수련의 시를 넘어 존재론적 깊이를 얻는다.
비움은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주인이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 마음의 주권과 AI 시대의 교육
― 공병영의 시가 오늘의 교육에 건네는 질문
공병영의 프롤로그와 시를 함께 읽으면 한 단어가 중심에 선다.
“마음의 주인.”
인간은 자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기준, 성공에 대한 욕망, 자존심과 비교의식이 마음의 운전석에 앉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병영의 마음공부는 그 운전석을 다시 비우는 과정으로 읽힌다.
타인의 기준을 내리고,
과거의 원망을 내려놓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덜어낸다.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이 돌아온다.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운전대를 자기 손에 다시 쥐는 일
이라는 철학이 여기에서 나온다.
이 문제는 AI 시대의 교육과도 깊게 연결된다.
AI는 인간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문장을 쓰며, 선택의 후보까지 제시한다.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살지 끊임없이 권한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인간은 자기 판단의 근거를 외부에 맡길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미래교육에는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못지않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선택하는가,
그 판단은 정말 내 것인가”
를 살피는 힘이 중요해진다.
이 지점에서 공병영이 말하는 ‘마음의 주인’은 개인적 명상의 차원을 넘어 미래교육의 중요한 인간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
기술을 사용하되 기술에게 자기 판단을 넘겨주지 않는 사람.
성공을 추구하되 성공과 자기 존재를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
세상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내부의 음성을 잃지 않는 사람.
공병영 총장이 지향하는 인간중심교육과 시인 공병영의 마음공부는 서로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다.
교육자 공병영과 시인 공병영은 결국 ‘인간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에서 만난다.
다만 문학적으로 한 가지 더 기대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비움이 남긴 것」 의 ‘비움·감사·평화·나 자신’은 아름답고 명료하지만 비교적 익숙한 명상적 어휘이기도 하다.
공병영 시인의 다음 작품들에서는 그의 생애에서만 꺼낼 수 있는 구체적 사물이 더 들어오면 좋겠다.
낙방 통지서를 접던 젊은 손,
마지막 시험장으로 향하던 택시의 뒷좌석,
늦은 밤 교육부 복도,
총장실 탁자 위에서 식어가던 차 한 잔.
그 구체적 삶의 사물들이 마음공부와 만나는 순간, 어느 누구도 대신 쓸 수 없는 ‘공병영만의 시’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충분히 깊은 생애가 있다.
시는 이제 그 생애의 구체적인 체온을 기다리고 있다.
Ⅲ. 맺음말
― 비움이 남긴 것은 공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사람은 평생 자기 몸에 무엇인가를 붙이며 산다.
학력
직함
명예
재산
평판
성취
처음에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달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잃지 않기 위해 다시 달린다.
그렇게 삶의 외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공병영의 「비움이 남긴 것」 은 그 벽을 한 겹씩 걷어내는 시다.
비우고,
덜어내고,
내려놓으며,
마침내 더 이상 벗길 것이 없어 보이는 자리까지 간다.
그 끝은 허무가 아니다.
한결 가벼워진 숨이 남아 있다.
덜 복잡한 생각이 남아 있다.
원망이 떠난 자리에는 감사가 꽃을 피우고,
두려움의 방에는 평화가 앉는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돌아와 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고 삶의 차가운 가장자리를 일찍 만났던 소년,
거듭 닫히는 시험장의 문 앞에서 다시 일어섰던 청년,
공직의 치열한 현실 속을 지나온 행정가,
여러 책임의 자리에 올랐던 교육자,
이제 마음의 주권을 다시 바라보는 한 사람.
그 생애가 시의 마지막 세 행 속에서 서로 포개진다.
공병영의 시에서 비움은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자기 아닌 것들을 덜어내어 자기에게 돌아가는 일이다.
삶의 전반부가 획득의 문법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존재의 문법이 열린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본래의 내가 남는가.
얼마나 높은 곳까지 갈 것인가보다
그 높은 곳에서도 자기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비움이 남긴 것」은 그 질문 앞에 작은 의자 하나를 놓는다.
그 의자에는 화려한 직함이 앉아 있지 않다.
총장도,
고위공직자도,
행정고시 합격자도 아니다.
아무 수식어 없이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 이름이 공병영이다.
많이 얻어서 자신을 증명하는 삶에서,
많이 덜어내고도 사라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삶으로.
세상의 여러 자리를 지나
마침내 자기 마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비움이 남긴 것」 의 가장 깊은 시적 성취를 본다.
비움이 남긴 것은 빈자리가 아니었다.
한결 가벼워진 숨이었고,
감사였으며,
평화였다.
무엇보다,
오래 바깥을 향해 달리던 한 사람이
마침내 자기 곁으로 돌아와 앉을 수 있는
마음 한 칸이었다.
ㅡ청람

□□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 앞에서
공병영 총장님께.
어제 천안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총장님을 뵙고 돌아와, 총장님의 삶과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비움이 남긴 것」 이라는 시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보다 자기 마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여의신 아픔을 지나셨고, 거듭된 고시 낙방의 시간을 견디셨으며, 마침내 공직에 들어서 교육행정의 여러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망할 만한 성취의 길을 걸어오셨음에도, 삶의 어느 자리에서 다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마음의 주인’이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셨다는 점이 제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비움이 남긴 것」 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화려한 깨달음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비운 뒤 남은 것이 ‘한결 가벼워진 숨결’이고, ‘덜 복잡한 생각’이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덜’이라는 한 글자에 총장님의 삶을 대하는 겸허가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모든 번민을 초월했다고 말하지 않고, 어제보다 조금 가벼워지고 조금 덜 복잡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외려 오래 자신을 바라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깊이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직함도, 성취도, 명예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참 귀했습니다.
평생 앞으로 달려온 사람이 어느 날 자기 곁에 자리를 하나 내어주고, 그곳에 아무 수식어 없는 자신을 앉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총장님의 시에서 비움은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아닌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어 본래의 자기에게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시인 공병영과 교육자 공병영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채워주려 합니다.
지식도 채우고,
경력도 채우고,
스펙도 채우며,
이제는 AI를 이용해 빈 시간마저 효율로 채우려 합니다.
그럴수록 교육은 역으로 인간에게 무엇을 비워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매인 마음,
끝없는 비교,
실패에 대한 공포,
성공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압박,
기계가 제시한 답을 자기 판단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습관.
이런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한 아이가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총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공부’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억하고 더 빠르게 답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더 많이 아는 힘’만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힘일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그것을 선택하는가.
AI의 답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내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미래교육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추구해 온 인간중심교육과 마음공부의 철학을 더욱 깊이 이해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저 역시 오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학교가 아이들에게 정답만 가르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품어왔습니다.
아이 한 사람의 질문을 오래 바라보고,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가능성을 기다리며, 자기 삶의 언어를 갖도록 돕는 교육.
총장님의 마음공부와 제가 오래 품어 온 이러한 교육적 질문 사이에도 서로 깊이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글로벌사이버대학교를 찾았을 때 공간 전체에서 느껴졌던 특유의 생기 역시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맑히고, 인간 안의 가능성을 일으키려는 교육의 뜻은 설명문보다 사람의 표정과 공간의 공기에서 먼저 전해질 때가 있는 듯합니다.
총장님과 학교 관계자 여러분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신 마음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총장님의 시를 읽으며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품었습니다.
삶의 전반부에는 사람이 세상의 여러 자리를 찾아갑니다.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면 세상의 자리보다 자기 마음이 돌아갈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더 귀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비움이 남긴 것」 은 바로 그 자리에 놓인 작은 의자 한 개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의자에는 총장이라는 직함보다 먼저 한 사람의 공병영이 앉아 있었습니다.
오랜 실패도,
성취도,
눈물도,
마음공부의 시간도 함께 품은 채 말입니다.
그러한 생애에서 나온 시이기에 몇 줄의 평이한 언어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귀한 만남과 말씀에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총장님께서 걸어오신 마음공부의 길과 인간중심교육의 뜻이 앞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힘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저 역시 배움의 자세로 좋은 대화를 오래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6, 8, 12
청람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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