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녹기 때문에 사랑은 시간을 갖는다 ― 김경수 「아이스크림과 사랑」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녹기 때문에 사랑은 시간을 갖는다 ― 김경수 「아이스크림과 사랑」 2026.08.16
녹기 때문에 사랑은 시간을 갖는다 ― 김경수 「아이스크림과 사랑」

아이스크림과 사랑

시인 김경수

내 일기장에 바람이 다녀갔다.

바람은 무지개를 끌고 왔고

무지개에서 일곱 빛깔 물고기가 헤엄쳐 왔다.

물고기가 헤엄쳐가는 곳은 슬픈 소설의 결말 부위이다.

사랑을 믿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시간을 보면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들의 인생은 슬픈 인생인가? 기쁜 인생인가?

그 답을 생각하며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떠먹어 보라.

아이스크림은 차갑고 달지만

그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분노한다.

사랑도 믿음도 그렇다.

얼굴을 바꾸는 변검술사처럼 지속적으로 바뀐다.

사랑이 있지만, 영원한 사랑은 없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늘어간다.

내 일기장에서 바람이 넘어지고

이별한 사람들 서로 간의 대화가 차갑다.

얼음 같은 냉기冷氣가 나의 일기장에 닿는다.

슬픈 결말의 문장을 버릴 줄 아는 것도 일기장이 해야 할 일이다.

내 일기장은 벌목伐木으로 나무가 쓰러지는 숲이 되어간다.

ㅡ계간 《시와 사상》(2026, 가을호)

김경수 / 1993년 《현대시》 등단. 시집 『이야기와 놀다』『편지와 물고기』『산 속 찻집 카페에 안개가 산다』 외

녹기 때문에 사랑은 시간을 갖는다

― 김경수 「아이스크림과 사랑」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이스크림은

녹으면서

제 몸의 시간을 보여준다.

단단했던 것이 물러지고, 차가웠던 것이 미지근해지며, 형태를 지키던 것이 끝내 제 모양을 포기한다. 김경수 시인의 「아이스크림과 사랑」 은 바로 이 사라지는 물성에 사랑의 운명을 포개 놓는다. 사랑을 꽃이나 별, 불꽃 같은 익숙한 상징에 기대지 않고, 한 컵의 아이스크림 속으로 데려왔다는 점에서 이 시의 첫 번째 낯섦이 생긴다.

달고 차갑다.

사랑 역시 그러하다. 혀끝에는 단맛이 먼저 닿지만, 그 단맛의 내부에는 이미 소멸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시의 첫머리는 일기장에서 시작된다.

“내 일기장에 바람이 다녀갔다.”

일기장은 가장 사적인 방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문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잠시 몸을 눕히는 장소다. 그곳에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은 머물지 않는 존재다.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왔다 간 자리를 온전히 증명하기도 어렵다.

그 바람이 무지개를 데려오고, 무지개에서는 다시 “일곱 빛깔 물고기”가 헤엄쳐 나온다.

현실의 인과는 여기에서 무너진다.

바람이 무지개를 끌고 오고, 무지개가 물고기를 낳는다. 김경수 시인은 논리의 사다리를 치우고 이미지의 물길을 낸다. 그 물고기가 향하는 곳은 강도 바다도 아니다.

“슬픈 소설의 결말 부위”다.

이 표현은 이 시에서 유난히 오래 걸린다.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을 헤엄친다. 생명체가 서사의 결말을 향해 움직인다. 한 사람의 사랑과 삶이 이미 쓰이고 있는 소설이라면, 물고기는 그 결말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시간의 비유가 된다.

그 지점에서 시는 사랑을 곧바로 슬픔과 맞닿게 한다.

“사랑을 믿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슬픈 것이 아니다. 사랑을 믿는 사람이 슬프다고 쓴다.

이 역설은 사랑의 본질 가운데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 사랑은 영원을 꿈꾸지만 사랑을 담고 있는 인간은 유한하다. 마음은 오래 머물고 싶어도 시간은 한자리에 눕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속도로 늙지도 않고, 같은 깊이로 사랑하지도 않으며, 같은 방식으로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의 문제를 시간과 죽음의 자리까지 밀어붙인다.

“시간을 보면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시간은 여기에서 시계의 숫자가 아니다. 무언가가 줄어드는 방식이다.

아이스크림 한 컵을 떠먹는 동안에도 남은 양은 줄어든다. 입안의 단맛과 컵 안의 소멸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이 이 시가 포착한 기묘한 아이러니다. 가장 달콤한 순간은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은 차갑고 달지만 / 그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분노한다.”

이 대목에서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소멸을 감지하는 존재로 바뀐다.

녹고 있다는 사실, 다 먹히거나 흘러 없어질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스크림은 ‘분노’한다. 사물에게 감정을 건네는 이 의인화는 사랑의 내면을 대신 말해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끝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끝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진다. 가까워질수록 상실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손을 잡는 순간부터 놓을 날의 가능성까지 태어난다. 인간의 사랑이 지닌 비극은 바로 그 양면성에 있다.

시인은 이를 “변검술사”라는 다소 이질적인 이미지로 옮긴다.

“얼굴을 바꾸는 변검술사처럼 지속적으로 바뀐다.”

사랑은 한 얼굴로 끝까지 남아 있지 않는다.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익숙함이 신뢰가 되기도 하며, 신뢰가 권태로 기울기도 한다. 간혹 애정은 미움의 가면을 쓰고, 미움 뒤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사랑의 잔광이 숨어 있기도 하다.

사랑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이 시가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단정하는 자리도 바로 이 변화의 속성에 기대어 있다. 다소 냉혹해 보이는 선언이지만, 이를 사랑의 부정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지속되는 사랑이 없다는 뜻으로 읽을 때 시의 층위는 더 깊어진다.

사랑은 지속되더라도 변한다.

사람이 변하고, 관계가 변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도 변한다.

처음의 사랑을 그대로 냉동 보관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바람은 다시 일기장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무지개를 끌고 왔던 바람이 이제는 일기장 안에서 넘어져 있다.

참 묘한 장면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넘어진다는 것은 사랑의 기운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처럼 읽힌다. 이별한 사람들의 대화에는 냉기가 번지고, 그 냉기는 일기장에까지 닿는다.

이때 아이스크림의 ‘차가움’과 이별의 ‘냉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포개진다.

처음의 차가움은 달콤함을 품은 차가움이었다. 뒤의 냉기는 관계가 빠져나간 자리의 차가움이다.

같은 저온低溫이지만 의미는 정반대다.

김경수 시인은 바로 이러한 감각의 변주를 통해 사랑의 전후를 보여준다.

마지막 두 행은 이 시를 단순한 연애시에서 삶과 기록의 시로 바꿔 놓는다.

“슬픈 결말의 문장을 버릴 줄 아는 것도 일기장이 해야 할 일이다.

내 일기장은 벌목伐木으로 나무가 쓰러지는 숲이 되어간다.”

일기장은 기억을 보존하는 장소인 줄 알았는데, 시인은 그곳에서 문장을 버린다.

모든 기억을 간직하는 것만이 삶의 성숙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문장은 품어야 하지만 어떤 문장은 베어내야 한다. 떠난 사람의 흔적, 끝난 사랑의 문장, 더 이상 현재를 살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기억은 때로 기록보다 삭제를 요구한다.

그 삭제의 풍경이 ‘벌목’이다.

가벼운 지우개질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가 넘어가는 일처럼 아프고, 숲의 모양이 달라지는 일처럼 크다. 한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이름 몇 글자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자라난 자기 내부의 숲 일부를 베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의 숲은 황폐하면서도 묘하게 새로운 공간을 예비한다.

쓰러진 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올 수도 있다.

사라진 문장 자리에는 다른 문장이 놓일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과 사랑」 의 매력은 사랑을 아름답다고 칭송하지 않는 데 있다. 사랑의 달콤함 속에 녹는 시간을 넣고, 무지개 곁에 슬픈 소설의 결말을 배치하며, 일기장을 추억의 창고가 아니라 벌목이 진행되는 숲으로 바꾼다.

이 낯선 접속들이 시의 체온을 만든다.

사랑은 아이스크림과 닮았다.

차갑고 달다.

손에 쥔 순간부터 조금씩 형태를 잃는다.

그렇다고 녹는다는 이유로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어쩌면 유한하기 때문에 더 깊이 혀끝에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경수 시인의 이 작품은 사랑의 영원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가진 ‘녹는 시간’을 바라본다. 그 시간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슬퍼지고, 얼마나 차가워지며, 끝내 자기 일기장의 숲에서 몇 그루의 기억을 베어내야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스크림은 다 녹고 나면 컵의 바닥을 드러낸다.

사랑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바닥이 있다.

그 바닥에 남는 것은 달콤함도 냉기도 아니다.

한때 누군가를 온몸으로 사랑했다는, 쉽게 벌목되지 않는 나이테 하나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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