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법전의 문장을 지나 소나기의 투명함으로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전의 문장을 지나 소나기의 투명함으로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2026.08.17
법전의 문장을 지나 소나기의 투명함으로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시인 青民 박철언

작은 수증기로 피어오른 그리움

새털구름으로 높이 날다가

양떼구름으로 사뿐 내려섰다가

뭉게구름으로 커지는 그리움의 무게

비구름 안개구름으로 머무르다가

공기보다 낮아진 밀도가 바닥 놓치니

마침내 지상을 물빛으로 수없이 가른다

그리움 쌓여 떠다니던 하얀 연서戀書

해안선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온몸을 시원하게 적셔오는 너

커지는 무게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그리움 더는 숨길 수 없어

와락 퍼붓는 투명한 오열嗚咽

하늘과 땅의 숨결이 이어진 날

너와 나의 그리움도 하나 되어

서로의 몸속으로도 몸 밖으로도

짙게 흐르는 걸까

법전의 문장을 지나 소나기의 투명함으로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전에는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다.

條文은 마른 언어이고, 판결은 대개 결론을 향해 곧게 간다. 공직의 문장은 더욱 그러하다. 사실을 가려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며, 한 글자의 模糊함조차 경계해야 한다.

그런 언어의 숲을 한평생 지나온 사람이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속에 ‘그리움’을 넣는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닿는 것은 바로 이 뜻밖의 間隙이다.

그는 법조인으로, 공직자로 삶의 적지 않은 시간을 현실의 가장 단단한 지층 위에서 보냈다. 사람과 사람의 이해가 부딪치고, 시대와 정치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현장도 지나왔다.

그런 세월을 밟아온 그의 시가 뜻밖에도 맑다.

어린아이의 손바닥에 떨어진 빗방울 같다.

꾸미지 않고, 비틀어 보이지 않으며, 제 감정을 지적인 修辭 뒤에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아직 하늘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이 남아 있다.

첫 연부터 그렇다.

“작은 수증기로 피어오른 그리움

새털구름으로 높이 날다가

양떼구름으로 사뿐 내려섰다가

뭉게구름으로 커지는 그리움의 무게”

그리움이 처음부터 폭우가 되어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수증기에서 시작한다.

참으로 섬세한 발상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름 하나가 잠시 떠오르고, 지나간 목소리 하나가 귓가에 머무는 정도다. 그것이 하루를 지나고 계절을 건너면서 조금씩 부피를 얻는다.

수증기가 새털구름이 되고, 양떼구름을 거쳐 뭉게구름이 되듯 마음도 그렇게 불어난다.

시인은 氣象現象을 사랑의 내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과학의 언어가 서정의 언어로 옷을 갈아입는다.

여기에서 박철언 시인의 독특한 시심이 드러난다.

어려운 철학을 불러오지 않는다.

하늘에 이미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마음 안에 있는 것과 이어놓는다.

구름을 구름으로만 보지 않고, 아직 울지 못한 사람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움은 그렇게 하늘에서 무게를 갖는다.

이 시에서 특히 눈여겨볼 말은 ‘무게’다.

그리움에는 본래 저울이 없다.

몇 그램인지 잴 수도 없고 손에 올려놓을 수도 없다.

그런데 오래 쌓이면 분명 무거워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오래 보이지 않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는다.

시인은 그 보이지 않는 중량을 구름에 맡긴다.

마침내 구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그리움 더는 숨길 수 없어

와락 퍼붓는 투명한 嗚咽”

참 좋은 표현이다.

‘투명한 오열’.

눈물은 투명하다.

비도 투명하다.

그리움 역시 본래 색이 없다.

색이 없는 세 가지가 한순간에 만나 소나기가 된다.

더구나 ‘와락’이라는 말이 좋다.

오랫동안 품었던 사람을 마침내 만났을 때 두 팔을 벌려 안는 몸짓 같고, 참아왔던 울음이 더 이상 마음의 둑 안에 머물지 못하고 한꺼번에 터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소나기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

그 짧음 때문에 더욱 격렬하다.

사랑도 어떤 순간에는 그러하다.

평생 가슴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감정이 단 한 번의 만남, 한마디의 말, 낯익은 뒷모습 하나 앞에서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박철언 시인의 시에는 그러한 인간적 순정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사람의 시인데도 감정이 닳지 않았다.

이것은 귀한 일이다.

사람은 세상을 오래 살수록 영리해지기 쉽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감추는 법을 익히고, 기뻐도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으며, 그리워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오래된 방어막을 시 앞에서 내려놓는다.

보고 싶으면 그립다고 하고,

울고 싶으면 비를 내리게 한다.

좋으면 좋다고 한다.

그 꾸밈없음이 이 시를 맑게 한다.

그는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의 눈을 가졌으면서도, 시를 쓸 때만큼은 아직 비를 맞고 싶어 하는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 점에서 박철언 시인의 시적 젊음은 나이와 무관하다.

詩心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마음속에 경이로움을 잃지 않은 사람은 여든에도 소년일 수 있고,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아무 감응이 없는 사람은 스무 살에도 이미 늙어 있을 수 있다.

청민의 시에는 아직 놀랄 줄 아는 ‘마음’이 있다.

구름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저 안에 무엇이 저토록 많이 쌓였기에 비가 될까’ 하고 바라보는 눈이 있다.

그 눈이 구름을 그리움으로 바꿔놓는다.

“그리움 쌓여 떠다니던 하얀 연서”

여기에서는 구름이 편지가 된다.

‘하얀 연서’라는 표현에는 고전적인 낭만이 배어 있다.

요즘 사랑은 휴대전화의 짧은 문자로 오고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시인의 사랑은 아직 편지를 닮았다.

쓰고,

기다리고,

다시 읽고,

접어두었다가 오래 뒤에 꺼내 보는 사랑이다.

하여,

이 시의 그리움에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

수증기가 구름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구름이 제 무게를 견디다 마침내 비로 쏟아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사랑을 가볍지 않게 만든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개인의 그리움은 하늘과 땅의 관계로 넓어진다.

“하늘과 땅의 숨결이 이어진 날

너와 나의 그리움도 하나 되어

서로의 몸속으로도 몸 밖으로도

짙게 흐르는 걸까”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땅으로 스며든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 잠시 경계가 사라진다.

시인은 그 자연현상을 사랑의 합일로 옮겨놓는다.

‘너’와 ‘나’를 갈라놓던 거리도 빗속에서는 희미해진다.

몸 밖을 흐르는 빗물과 몸 안을 흐르는 그리움이 하나의 물길이 된다.

이 작품에서 소나기는 기상현상이 아니다.

두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물의 儀式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를 대하면서 나는 한 문인의 삶과 문학 사이에 놓인 흥미로운 역설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지나온 현실의 세계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법은 냉철해야 했고, 공직은 책임을 요구했으며, 시대의 한복판에는 수많은 이해와 갈등이 얽혀 있었을 터이다.

그러한 桎梏의 현장을 지나온 사람의 마음 한편에 이토록 맑은 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어쩌면 시는 그에게 그 우물을 지키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 때에도 굳어지지 않는 한 부분.

현실이 마음에 먼지를 얹을 때마다 작은 빗줄기로 씻어내는 한 부분.

그곳에서 청민의 시가 나온다.

그의 시에는 지나치게 꾸민 흔적이 드물다.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생각의 깊이를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맑은 시는 쉬운 시와 다르다.

맑음은 수많은 혼탁을 지나온 뒤에도 마음의 바닥이 보이는 상태다.

오래 살아온 사람이 맑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시대에 부딪치고, 삶의 높낮이를 숱하게 건너고도 여전히 구름 한 점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민 박철언 시인의 맑음은 순진함이 아니다.

세월을 통과하고도 잃지 않은 순정이다.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은 거창한 사랑의 선언을 하지 않는다.

구름이 모이고,

무거워지고,

마침내 비가 된다.

그것뿐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자연의 순환 속에 한 사람을 오래 그리워해 본 사람의 마음이 전부 들어 있다.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작은 수증기 하나였는데,

가슴을 떠나지 못해 구름이 되고,

말하지 못한 시간이 더해져 무거워지고,

끝내 견딜 수 없는 어느 날

한 사람의 가슴 위로

소나기처럼 와락 쏟아지는 것.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심은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젊어진다.

법조인의 엄정한 문장도,

공직자의 무거운 직함도,

지나온 세월의 먼지도 잠시 빗속에 내려놓는다.

그 자리에 한 소년이 서 있다.

두 손을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보는 소년.

청민의 시가 맑은 까닭은

아마

그 소년이 아직

마음속에서 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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