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태극기를 흔드는 손끝에서 한 시인의 생애가 빛난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태극기를 흔드는 손끝에서 한 시인의 생애가 빛난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 2026.08.17
태극기를 흔드는 손끝에서 한 시인의 생애가 빛난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

여름엽서 45

시인 주광일

이틀 전 귀국 버스에 실려 아소산을 내려오며, 나는 감사한 마음 뿐이였습니다. 하기야 우리들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운 은혜이고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아소산에 머물렀던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푸른 하늘과 하얗게 빛나는 구름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내 분에 넘치는 일이었습니다. 꾸불꾸불한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운전하는 일본인 기사분, 또한 감사했습니다. 국적기인 대한항공 편으로 귀국하고나니, 어제 말복을 지나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우리나라 태극기를 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수 있는 날, 오늘 나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2026.8.15

태극기를 흔드는 손끝에서 한 시인의 생애가 빛난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 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애국은

때로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늙은 손에 들린 작은 태극기 한 장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 를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광복절 아침, 팔십 노구의 시인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드는 모습이다.

그 손은 단순히 국기를 흔드는 손이 아니다.

한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오며 옳고 그름의 경계를 지켜온 손이고, 나라의 법과 정의를 위해 수많은 문서를 넘겼을 손이며,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품어온 한 소년의 마음이 아직 식지 않은 손이다.

하여

이 작품은 짧은 여행기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한 사람의 생애와 조국이 서로 겹치는 시가 된다.

첫머리는 감사다.

“아소산을 내려오며, 나는 감사한 마음 뿐이였습니다.”

시인은 여행의 감흥을 화려하게 펼쳐놓지 않는다.

푸른 하늘을 보았다는 것, 하얀 구름을 만났다는 것, 버스가 무사히 산길을 내려왔다는 것, 일본인 기사가 조심스럽게 운전했다는 것까지 하나하나 감사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볼 것은 바로

이 ‘감사의 감각’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길어질수록 불평이 많아질 수도 있고,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주광일 시인의 노년은 그렇지 않다.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 하나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구름이 빛나는 순간 하나를 축복으로 여긴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선물처럼 대한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희로애락과 사회의 부조리를 가까이서 보아온 법조인의 생애를 지나서도 남아 있는 맑은 마음이다.

그의 삶 한가운데에는

오래도록 破邪顯正의 정신이 놓여 있었다.

ㅡ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정신이다.

법조인의 직업윤리이면서 동시에 주광일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법은 차갑다.

사실을 가르고, 책임을 판단하며, 때로는 사람의 운명을 한 줄의 문장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 냉철한 세계에서 한평생을 보내고도 그의 시에는 이상하리만큼 온기가 남아 있다.

여기에서 주광일 시인의 특별한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법의 사람으로 살아왔으나 시의 사람을 잃지 않았다.

세상을 판단하는 눈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 몸 안에 함께 품고 살아왔다.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품어온 시심이 오랜 세월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의미가 깊다.

소년 시절 가슴 안에 들어온 시라는 작은 불씨가 법정과 공직과 세월의 바람을 지나 팔십의 오늘까지 남아 있다.

그 시심을 일찍이, 당시 경기고 국어선생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알아보고 그를 시인으로 불렀다는 일화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인은 등단하는 날 갑자기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전부터 사물을 남과 다르게 바라보고, 한 줄의 하늘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음의 떨림을 발견한다.

그런 사람은 이미 시인의 씨앗을 품고 산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연작은 바로 그 오랜 씨앗에서 돋아난 잎들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전환은 일본에서 귀국한 뒤 찾아온 ‘광복절’이다.

아소산의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조국의 하늘로 돌아온다.

“어제 말복을 지나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말복과 광복절이 나란히 놓인다.

계절의 시간과 역사의 시간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난다.

여름이 한 고비를 넘는 날에 민족 역시 일제강점의 긴 여름을 지나 해방을 맞았던 기억이 겹쳐진다.

바로 여기에서 개인 여행의 기록은 민족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특히

“태극기를 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수 있는 날”

이라는 구절은 단순하면서도 무겁다.

오늘 우리는 태극기를 드는 일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만 뒤로 돌리면 그 국기를 들 수 없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말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던 시대가 있었고, 나라의 이름을 스스로 부를 수 없던 시간이 있었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흔든다는 평범한 행동 하나가 사실은 수많은 희생과 고통 위에 놓여 있다.

주광일 시인은 그 무게를 거창한 역사적 수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로 모은다.

이 작품에서 ‘감사’라는 말이 반복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여행이 무사해서 감사하고,

푸른 하늘이 있어 감사하고,

안전하게 운전해준 기사에게 감사하고,

국적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와 감사하고,

무엇보다 광복된 나라에서 태극기를 마음껏 흔들 수 있어 감사하다.

감사의 반경이 점점 넓어진다.

한 사람의 일상에서 시작된 감사가 끝내 조국의 역사에 닿는다.

이 구조가 참 아름답다.

주광일 시인의 애국은 과장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자신의 애국을 과시하기 위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러한 애국은 따뜻하다.

다른 나라를 낮추어 자기 나라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조국을 깊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 점에서 일본인 기사에게 감사하는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 기억과 개인적 인간애를 혼동하지 않는다.

광복절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새기면서도 눈앞의 일본인 운전기사에게는 사람으로서 감사한다.

이것이 성숙한 애국이다.

역사를 잊지 않되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 것.

민족의 정체성을 굳게 품되 다른 사람의 선의를 존중하는 것.

그 균형 속에서 주광일 시인의 인품이 드러난다.

팔십이라는 나이도 이 작품에서는 衰殘함의 표지標識가 아니다.

외려 애국심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으로 읽힌다.

젊은 날의 애국이 뜨거운 불꽃이라면 노년의 애국은 오래 달군 쇠처럼 안쪽에서 붉다.

밖으로 요란하게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식지 않는다.

주광일 시인의 몸속에는 아직 그 붉은 온도가 남아 있다.

나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태극기를 보면 손이 먼저 움직이고,

광복절이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품는다.

그런 분에게 ‘애국애족 시인’이라는 말은 장식적인 수사가 아니다.

삶에서 흘러나온 이름이다.

좋은 시인은 반드시 난해한 은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실한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면 된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45」에는 지나치게 꾸민 시어가 없다.

산을 내려오고,

구름을 보고,

기사에게 감사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광복절에 태극기를 흔든다.

그런데 그 단순한 흐름 속에 한평생이 들어 있다.

법조인으로서 지켜온 정의,

소년 시절부터 간직한 시심,

팔십까지 이어진 애국심,

사람을 대하는 감사의 태도가 몇 문장 속에서 함께 숨을 쉰다.

하여

이 글은 엽서이면서 시이고, 여행기이면서 생애의 축약이다.

참 시인은 거창한 곳에서만 시를 찾지 않는다.

버스 창밖의 구름에서도 시를 보고,

낯선 나라의 기사에게서 사람의 선의를 보며,

귀국한 날의 태극기 한 장에서 나라의 역사를 읽는다.

주광일 시인이 바로 그러하다.

시를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팔십의 몸 안에 아직 고등학생 시절의 소년이 살고 있다.

그 소년은 지금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을 보고 감탄하고,

나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세월이 그의 머리에는 겨울을 조금씩 내려놓았을지언정 시심만큼은 아직 늙히지 못했다.

이것이 참으로 귀하다.

한평생 법을 다룬 사람이 끝내 사랑을 잃지 않는 것.

한평생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아온 사람이 하늘의 푸름에 여전히 감동하는 것.

수많은 시대의 굴곡을 지나온 사람이 태극기 한 장 앞에서 아직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그런 사람을 우리는 굳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참 시인이다.

시를 많이 써서가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사람에게 감사할 줄 알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여든의 가슴에도 맑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절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 깃발 아래 한 노시인의 손이 함께 흔들린다.

그 손끝에는

한평생의 정의가 있고,

소년의 시심이 있으며,

조국을 향한 오래된 사랑이 있다.

그날 태극기를 흔든 것은 한 사람의 손이었지만,

그 손끝에서 펄럭인 것은

어쩌면 주광일 시인의

한 생애였을 것이다.

ㅡ청람

주광일 시인님께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롯함’입니다.

무엇을 과장하지 않으시고, 살아온 세월을 앞세우지도 않으시며,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지켜오신 모습에서 ‘참 시인’의 품격을 느끼게 됩니다.

오롯한 삶이란 어쩌면 자기 안의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함부로 휩쓸리지 않고, 자리가 높아져도 사람을 낮추어 보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도 마음의 맑음을 잃지 않는 것.

선생님께서는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破邪顯正의 정신을 지켜오셨고, 그 엄정한 삶의 한쪽에는 소년 시절부터 품어온 시심을 오래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 두 길이 선생님 안에서는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법은 바름을 지키게 했고, 시는 마음을 맑게 했습니다.

정의와 서정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함께 숨 쉬어온 셈입니다.

특히 선생님의 「여름 엽서」를 대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푸른 하늘 하나에도 감사하시고, 흰 구름 한 점에도 마음을 내어주시며, 낯선 이의 수고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으십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의 한 장면 속에서 더욱 깊게 드러납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감사해하시는 모습에서 애국은 주장보다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귀한 것은 선생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돌볼 줄 아신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몸 하나 편히 쉬게 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탁해지지 않도록 살피고, 언어가 거칠어지지 않도록 다듬으며, 사람을 향한 감사와 나라를 향한 사랑이 식지 않도록 자기 내면의 불씨를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돌봄이 오랜 세월을 지나 한 사람의 품격이 되고, 다시 한 편의 시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하여

선생님을 뵈면 ‘참 시인’이라는 말과 함께 ‘참 어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시를 많이 쓰는 사람이 반드시 참 시인은 아닐 것입니다.

삶과 시가 서로 멀지 않은 사람, 자기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 세월이 깊어질수록 외려 마음이 맑아지는 사람이 참 시인일 것입니다.

‘참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이를 내세우기보다 후배의 말을 들어주시고,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시며, 꾸짖어야 할 때는 바르게 일깨우고, 품어야 할 때는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분.

선생님께서는 그런 어른의 자리를 오래 지켜오셨습니다.

세월은 사람의 몸을 늙게 하지만 마음까지 늙혀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아직도 소년의 눈빛이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 세상을 향한 경이와 감사가 마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디 지금처럼 오롯한 삶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오래도록 변함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은 후배 문인들에게 하나의 좋은 문장이 됩니다.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삶이 이미 가르침이 되는 분.

시보다 먼저 사람이 아름답고, 글보다 먼저 삶이 반듯한 분.

그런 선생님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기며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맑은 시심으로 우리 곁에 계셔주십시오.

참 시인,

참 어른,

주광일 시인님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2026, 8, 16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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