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사람의 안부를 묻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늦여름 안부」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계절의 문턱에서 사람의 안부를 묻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늦여름 안부」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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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안부
시인 青民 박철언
여보게,
그여름 어떠했는가
폭염이 할퀴고 간 자리
아직도 얼얼한가
퍼붓던 비에
마음의 둑 하나쯤
무너지지는 않았는가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런 날도 있는 거지
가을은 저만치서
슬그머니 손짓하며 오고 있는데
그대는 지금
어떤 빛깔로
이 길을 걸어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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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문턱에서 사람의 안부를 묻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늦여름 안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늦여름은 계절의 끝이 아니다.
한 사람이 지나온 마음의 날씨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늦여름 안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여보게,
그여름 어떠했는가”
이 첫마디는 시라기보다 오래된 친구가 건네는 안부처럼 들린다. 화려한 비유도 없고 거창한 수사도 없다. 그런데 그 평범한 호명이 이상하리만큼 깊다.
‘여보게’라는 한마디 때문이다.
이 호칭에는 거리보다 세월이 먼저 들어 있다. 함께 늙어가는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온기, 세상사를 어느 정도 겪고 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슨한 다정함이 배어 있다.
박철언 시인의 시가 지닌 힘은 바로 이러한 생활어의 품격에 있다.
말을 높이지 않으면서 생각을 높이고, 문장을 꾸미지 않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 폭염과 폭우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생의 은유다
시인은 여름을 아름답게 회상하지 않는다.
“폭염이 할퀴고 간 자리
아직도 얼얼한가”
여름은 여기서 풍경이 아니다.
살아오며 감당했던 고통과 시련의 다른 이름이다.
폭염은 사람을 지치게 했던 삶의 고비이며, 폭우는 예기치 않게 닥친 상처와 좌절로 읽힌다.
더 인상적인 대목은
“퍼붓던 비에
마음의 둑 하나쯤
무너지지는 않았는가”
라는 표현이다.
‘마음의 둑’이라는 시어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둑 하나를 쌓고 살아간다. 참는 힘의 둑, 체면의 둑, 인내의 둑,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 둑이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도 그 둑 안쪽에는 수많은 감정이 차오른다.
어느 날 삶의 폭우가 쏟아지면 사람은 무너지기도 한다.
박철언 시인은 그 무너짐을 나약함이라 꾸짖지 않는다.
그저 묻는다.
“무너지지는 않았는가.”
이 질문 속에는 판단보다 염려가 있다.
바로 이에서 그의 삶의 철학이 드러난다.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먼저 살피는 태도, 상처를 분석하기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 자세다.
□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는 오래된 삶의 철학
이 작품의 중심은 어쩌면 다음 네 행에 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문장은 소박하다.
허나 이처럼 쉬운 말을 제대로 쓰기는 어렵다.
삶을 오래 살아보지 않고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이 있으며,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 방법도 없는 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닐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 말 한마디가 때로 사람의 등을 받쳐준다.
박철언 시인의 시 세계에는 이런 수용의 미학이 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픔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이라는 것이 본래 밝음과 어둠, 성공과 실패, 기쁨과 상처가 한 길 위에 함께 놓인 것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담담함은 체념이 아니다.
살아본 사람의 너그러움이다.
□ 가을은 오지만, 시인은 계절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후반부에서 계절이 움직인다.
“가을은 저만치서
슬그머니 손짓하며 오고 있는데”
여기서 ‘슬그머니’라는 부사가 아름답다.
가을은 거창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큰 문을 열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저만치서 손짓한다.
이 표현 속에는 박철언 시인의 미의식이 잘 드러난다.
그는 자연을 과장하지 않는다. 계절을 웅장한 상징으로 만들지 않는다. 자연은 그저 사람 곁에 다가오는 존재다.
늦여름 끝에 서면 우리는 언제나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삶도 그렇다.
힘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은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다만 시인은 “가을이 오니 괜찮아질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그대는 지금
어떤 빛깔로
이 길을 걸어오고 있는가”
이 질문이 이 시를 단순한 계절시에서 인생시로 끌어올린다.
중요한 것은 가을이 오는 일이 아니다.
그 가을을 맞는 사람이 어떤 빛깔이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삶은 사람에게 계속 색을 입힌다.
기쁨은 밝은 색을 남기고, 상처는 어두운 색을 남긴다. 사랑과 이별, 성공과 좌절, 기다림과 용서가 사람의 내면에 조금씩 색을 쌓는다.
박철언 시인은 그 색을 묻는다.
그대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이 계절을 건너고 있는가.
□ 박철언의 시는 ‘사람을 향한 시’다
박철언 시인의 삶을 오래 관통해온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거대한 담론보다 사람이 먼저 온다.
시대의 중심을 지나온 삶의 경험이 있음에도 작품 속 화자는 권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곁에 앉는다.
안부를 묻는다.
기다려준다.
그것이 그의 시적 품격이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수록 질문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
「늦여름 안부」 에서 박철언 시인은 후자에 가깝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는가”라고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그여름 어떠했는가.”
하고 묻는다.
이 한마디 안에는 이미 위로가 들어 있다.
□ 맺음말
― 좋은 시는 끝내 사람의 안부에 닿는다
「늦여름 안부」 는 짧은 시다.
짧지만 그 안에는 계절 하나와 인생 하나가 함께 들어 있다.
폭염이 있고,
폭우가 있고,
무너질 듯한 마음의 둑이 있다.
그 끝에는 가을이 서 있다.
박철언 시인은 희망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
“가을은 온다”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그저 저만치서 손짓하는 계절을 보여준다.
이 절제된 태도가 외려 따뜻하다.
진짜 위로는 사람에게 빨리 일어서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힘들었느냐고 먼저 물어주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늦여름 안부」는 계절의 시이면서 관계의 시이고, 위로의 시이면서 인생의 시다.
박철언 시인은 늦여름 끝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 계절을 건너오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어떤 빛깔로 오고 있느냐고.
그 질문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시 속의 ‘그대’가 자신임을 느끼게 된다.
좋은 시는 결국 사람을 돌아보게 한다.
더 좋은 시는 사람으로 자기 마음의 안부를 스스로 묻게 한다.
「늦여름 안부」 가 오래 남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안부를 건네는 마음은 남는다.
박철언 시인의 이 짧은 시는 늦여름 한복판에 놓인 작은 의자와 같다.
지친 사람이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자기 마음의 빛깔을 한 번쯤 바라보게 하는 의자.
그것이 이 작품이 지닌 미학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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