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봉사의 현장에서 시보다 먼저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신계전 시인의 「깡녀」 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봉사의 현장에서 시보다 먼저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신계전 시인의 「깡녀」 를 읽다 2026.08.24
봉사의 현장에서 시보다 먼저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신계전 시인의 「깡녀」 를 읽다

깡녀

시인 신계전

복구지원단으로 고향에 와서

다른데 눈 돌릴 틈이없었다

정작 고종사촌 오빠에게는 전화도 못하고.국제문단 고문님께 전화드리고. 저녁에야 숙소에서 한국시조협회 전

통영 지부장님께 전화드렸더니

대뜸 아침을 사주시겠딘고하셔서

너무 고맙지만 사양했는데 하도

우기셔서 그 뜻을 내치기가 죄스러웠다

아침 일찍 숙소 로비까지 오셔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맛있고 푸짐한 아침으로 힘내서 출발한 현장에서 젊고 낯선 아가씨가 불쑥 합승하였다

현장안내할 담당자냐고 물었더니

봉사자라고했다

현재 거제에 아버지가 거주하고있는 아가씨는 불과 결혼을 보름 앞둔 부산모 특수학교 교사이자 예비신부였다

알아본즉 아버지도 못말리는 봉사의 달인이었는데 인류애로 똘똘 뭉쳐진 모범 봉사자로 보였다

방향이 우리가 가는 쪽이라 무조건 탔다는데 우리도 무조건 환영하여

6인 1조로 뭉친 복구 둘째날,

어제 앞마당만 엄두를 낸 그 집이 자꾸만 눈에 밟혔지만 가장 피해를 많이 당했다는 마을로 배정받아

크게 숨을쉬며 아깝게 버려지는 물건들부터 치우고 정리하기,

그리고 집만 남기고 남새밭,창고

마당까지 범람했다는 명당터에서

흙치우기가 시작되었다

두 대의 포크레인 기사도 웃으며 반겨주었다

기계가 못미치는 부분에 우리가

담당해야할 일이었다

새로 한 팀이 된 아가씨는 우리 팀의 흑기사로 미소를 잃지않는

여전사였다

얼굴 마사지 대신 땀과 흙마사지를 하며 신부수업?을 하였다

방학동안 계속 봉사할것이라고 했다

저런 아가씨도 있는데 우리는 대수구나 !

부산배화특수학교 교사 권양!

결혼을 축하합니다

추억의 봉사단 깡녀로 등극함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봉사의 현장에서 시보다 먼저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신계전 시인의「깡녀」를 읽다

신계전 시인의 「깡녀」는 잘 다듬어진 문장보다 먼저 뜨거운 현장을 데려오는 작품이다.

흙냄새가 나고

땀 냄새가 나며

수해 뒤 엉망이 된 마당과 창고, 남새밭의 젖은 흙이 그대로 묻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시라기보다 재난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더 귀한 것은 시인이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향의 수해 소식을 듣고 지인들과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도 신계전 시인이다. 복구지원단에 몸을 싣고 흙을 퍼내고 버려지는 살림을 정리한 사람도 시인이다. 그런데 작품의 중심에는 정작 자신이 없다.

그 자리를 한 젊은 여인에게 내어준다.

결혼을 불과 보름 앞둔 특수학교 교사 권양.

보통이라면 예식 준비와 신혼의 설렘으로 가장 분주할 시간이다. 피부 관리와 옷차림을 챙기고, 결혼식 순서를 확인하며,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을 때다.

그런데 그녀가 선택한 곳은 미용실도 예식장도 아니었다.

수해 현장이었다.

시인은 그것을 재미있게 뒤집는다.

얼굴 마사지를 받을 예비신부가

“땀과 흙마사지”를 하며 신부수업을 한다.

이 한 장면이 「깡녀」의 백미다.

웃음이 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묵직한 감동이 따라온다.

세상에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얼굴을 가꾸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무너진 마당을 일으켜 세우느라 얼굴에 흙을 묻히는 사람도 있다.

어느 얼굴이 더 아름다운가를 이 작품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자연스럽게 답하도록 만든다.

‘깡녀’라는 제목도 흥미롭다.

거칠고 씩씩하며 웬만한 일에는 물러서지 않는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 ‘깡’은 단순한 배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 앞으로 몸을 먼저 보내는 용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찾아가는 마음이고

낯선 사람의 집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는 행동이며

방학 동안 계속 봉사하겠다는 결심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깡녀’는 별명이면서 하나의 인간형이 된다.

남의 아픔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사람.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 젊은 교사의 직업이다.

특수학교 교사라는 사실은 작품의 의미를 한층 깊게 만든다.

평소에도 누군가의 느린 걸음을 기다리고,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이 방학이 되자 또 다른 어려움의 현장으로 간다.

직업이 봉사의 간판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시인은 그런 사람을 발견하고 기꺼이 자기 작품의 중앙에 세운다.

이에 신계전 시인의 사람됨이 드러난다.

좋은 문인은 자기 행동을 확대하기보다 타인의 선행을 크게 보이게 할 줄 안다.

자기가 수해 현장에 갔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보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봉사자의 얼굴을 오래 기억한다.

이것이 원로의 품이다.

젊은 사람에게서 배울 것을 발견하고

그를 칭찬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람 앞에서도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것.

그런 태도는 시의 기법보다 더 귀하다.

신계전 시인의 작품에는 종종 이런 살아 있는 체온이 있다.

문장을 지나치게 장식하지 않는다.

사람을 현장에서 바로 데려온다.

말투도 생생하고

사건도 거칠게 숨 쉬며

그 안에 해학 하나를 툭 던진다.

그래서 「깡녀」는 정제된 서정시의 형식보다 생활 서사에 가깝지만 외려 그 때문에 힘이 있다.

재난 현장의 시는 지나치게 비장해지기 쉽다.

신계전 시인은 그 무거움 한가운데 웃음을 놓는다.

포크레인 기사들이 웃으며 맞아주는 장면

예비신부가 흙마사지를 하며 신부수업을 한다는 표현

마지막에 ‘추억의 봉사단 깡녀’로 등극시킨 대목이 그렇다.

그 웃음은 고통을 희화화하지 않는다.

고통 속에서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생활의 웃음이다.

사실 재난 현장에는 거창한 영웅보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삽 한 자루 들고 오는 사람

물 한 병 건네는 사람

젖은 가재도구를 함께 버려주는 사람

흙탕물 속에서도 농담 하나로 옆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

신계전 시인은 그 작은 영웅들을 알아보는 눈을 지녔다.

그 눈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한 가지가 더욱 또렷해진다.

문인의 품격은 원고지에서만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를 아무리 아름답게 써도 남의 재난 앞에서 몸을 돌린다면 그 문장은 어딘가 비어 있을 수 있다.

신계전 시인은 달랐다.

수해 소식 앞에서 먼저 발이 움직였다.

지인들과 현장으로 향했고

흙을 치웠으며

사람을 만났고

그 가운데 더 훌륭한 사람을 발견해 작품으로 세웠다.

이 점에서 신계전 시인은 이 시대 한국 문단에서 귀하게 바라볼 만한 원로다.

그의 문학은 입으로만 휴머니즘을 말하지 않는다.

문장보다 먼저 장화를 신고 흙탕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울림이다.

「깡녀」의 주인공은 권양이지만, 그 권양을 알아본 눈 또한 아름답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

좋은 시인은 그 사람을 자기보다 앞에 세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두 종류의 아름다움이 함께 있다.

결혼을 보름 앞두고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젊은 교사의 아름다움.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이름을 기록하고 축복해주는 원로시인의 아름다움.

세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한곳에서 만난다.

그곳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봉사의 자리다.

신계전 시인의 「깡녀」는 한 예비신부의 봉사담을 적은 작품에 머물지 않는다.

묻는다.

재난 앞에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가서 손을 보태고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이름을 오래 불러주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문학의 가장 따뜻한 쓰임이다.

신계전 시인님께

「깡녀」를 읽고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수해 현장을 기록한 글인데 이상하게 절망보다 사람의 온기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집만 겨우 남은 마당과 창고, 흙에 덮인 남새밭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야 마땅한데, 선생님의 글 속에는 그 흙탕물 한가운데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불과 보름 앞둔 젊은 특수학교 교사가 봉사 현장으로 달려왔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날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때입니다.

그 젊은이는 얼굴에 화장을 더하기보다 흙을 묻혔고, 신부수업 대신 삽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모습을 “땀과 흙마사지”라고 표현하신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다가 금세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신부 화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그 젊은 봉사자 못지않게 마음에 남은 사람이 한 분 더 계셨습니다.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수해 소식을 듣고 지인들과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가셨으면서도 그 일을 자기 선행으로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외려 현장에서 만난 젊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사람을 작품의 한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원로의 품격이라 생각합니다.

나이와 경륜을 앞세워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젊은 사람에게서 더 귀한 것을 발견하고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마음.

선생님께서는 그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문학의 어른은 작품을 많이 발표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행동을 알아보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며, 다음 세대에게 “이런 사람이 참 귀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깡녀」에는 바로 그런 어른의 눈이 있습니다.

저는 평소 좋은 시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아무리 높아도 사람이 그 높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 글은 오래 따뜻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는 사람의 체온이 먼저 느껴집니다.

세련된 수사보다 현장의 숨결이 있고

관념보다 움직이는 발이 있으며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옵니다.

그것이 참 좋습니다.

특히 재난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신 선생님의 모습은 많은 문인에게 귀감이 될 만합니다.

슬픔을 소재로 삼는 사람은 많습니다.

슬픔 속으로 직접 들어가 삽을 드는 문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시를 쓰기 전에 먼저 현장에 계셨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깡녀」의 문장은 이미 충분한 무게를 얻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에는 흙이 묻어 있습니다.

사람이 묻어 있습니다.

웃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선함을 크게 볼 줄 아는 따뜻한 눈이 있습니다.

그런 문학이 오래 살아남습니다.

권양의 결혼을 축복하신 그 마음처럼 저 또한 그 젊은 선생님의 앞날에 큰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동시에 그런 사람을 발견하고 기록해주신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선생님.

오래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앞으로도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좋은 사람들을 찾아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문학의 따뜻한 장부에 오래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세상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번 「깡녀」에서도 다시 보여주셨습니다.

흙탕물 속에서도 사람의 꽃은 핀다는 것.

그 꽃을 발견한 시인의 눈 또한 꽃이라는 것.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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