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이희국 친구님께 ―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사람은 빛납니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동경 이희국 친구님께 ―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사람은 빛납니다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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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지 5
동경 이희국
첫 사이클, 두 번째 항암치료 후 사흘째
입 안 곳곳이 헐었다.
칫솔이 닿는 일조차 버겁고
한 끼를 다 먹는 일이 하루의 큰일이 되었다.
말하는 것,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마저 힘겨울 만큼
체력은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밤사이 네댓 번씩 화장실을 오가다 보니
그때마다 잠을 깨는 아내에게 미안해
오늘은 몰래 서재로 건너와 잠을 청했다.
몸 하나 아픈 일이
내 곁의 사람까지 함께 잠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위에서 아래로,
조금씩 바닥을 향해 내려가다가
보름쯤 지나면 다시 가파르게 회복한다는
스물하루의 항암 사이클.
지금 나는
그 곡선의 가장 낮은 곳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이삼 일이 지나면
조금씩 몸이 되돌아오기 시작한다는 그동안의 통계에
오늘은 작은 희망 하나를 걸어둔다.
끝은 아직 너무 멀어 보인다.
그러나 하루가 접히면
어김없이 새 하루가 펼쳐진다.
아픈 뒤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향해 모여드는 수많은 마음,
멀리서 들려오는 기도의 소리,
늘 곁에 있어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감사하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던 것들.
나는 요즘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내고 있다.
난데없는 화재가 휩쓸고 간 집에서
모든 것이 재가 된 줄 알았는데,
무너진 한구석을 헤치다가
불길도 가져가지 못한
온전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고통은 많은 것을 태우지만
끝내 태우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배우고 있다.
□ 시인 이희국 문예사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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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이희국 친구님께
―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사람은 빛납니다
동경 친구님,
병상일지 5를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문장을 멈춰 읽었습니다.
입 안 곳곳이 헐고,
칫솔이 닿는 일조차 고통이 되고,
한 끼를 다 먹는 일이 하루의 큰일이 되어버린 시간.
밤사이 네댓 번씩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곁에서 함께 잠을 설치는 아내가 마음에 걸려
몰래 서재로 건너가 잠을 청했다는 대목에서는,
한동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아픈데,
마음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만으로도 벅찬 시간에
아내의 잠을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친구님께서 지금 병과 싸우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동경님,
친구님은 이미 극복하고 계십니다.
완치라는 마지막 결과가 아직 저 멀리 있다고 해서,
극복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견디며 하루를 건너는 것도 극복이고,
밥 한 숟갈을 더 뜨는 것도 극복이며,
밤을 몇 번씩 깨면서 다시 눈을 감는 것도 극복입니다.
무엇보다 그 모진 시간을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는 일.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픈 사람은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렵습니다.
말 한마디 건네는 일조차 힘겨운 날이 있습니다.
그런 시간에 펜을 들고,
자기의 고통을 바라보고,
그 고통 속에서 다시 사람과 사랑과 감사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범인凡人의 힘만으로는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친구님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고통에게 자신을 전부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몸은 항암의 가장 낮은 곡선을 지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까지 그 바닥에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문장을 쓰고,
사람을 생각하고,
기도를 듣고,
사랑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미 이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특히 다음 문장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화재가 휩쓸고 간 집에서,
모든 것이 재가 된 줄 알았는데,
무너진 한구석을 헤치다가
불길도 가져가지 못한 온전한 물건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는 말씀.”
참으로 아픈 비유였습니다.
병은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입맛을 가져가고,
잠을 가져가고,
기력을 가져가고,
평범했던 하루의 자유마저 잠시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병도 끝내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
친구를 기억하는 마음,
기도를 받아들이는 마음,
한 줄의 글을 써 내려가는 마음.
그것까지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친구님께서는 지금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병상일지는 단순한 투병 기록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를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몸이 낮아질수록 마음의 눈은 더 멀리 보고,
체력이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의 귀한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그 역설을,
친구님은 지금 하루하루 몸으로 쓰고 계십니다.
어쩌면 사람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것을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할 때는 지나치던 것들이,
아프고 나면 하나하나 빛을 냅니다.
따뜻한 밥 한 끼,
아내의 발소리,
친구의 안부,
멀리서 보내오는 기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빛.
예전에는 너무 흔해서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날 가장 귀한 것이 되어 돌아옵니다.
친구님은 지금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내고 계십니다.
그것은 패배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도 삶의 보석을 찾아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동경님,
지금 얼마나 힘드신지,
곁에 있지 않은 사람이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쉽게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힘을 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쉽게 견디시라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누구보다 잘 견디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아주 근사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고통 앞에서 소리치지 않고,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하루의 작은 희망 하나를 붙들고,
다음 날을 기다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귀합니다.
오늘은 가장 낮은 곳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낮은 곳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친구님이 적어두신 것처럼,
하루가 접히면 또 한 장의 새 하루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 새 하루에는 오늘보다 조금 덜 아픈 입안이 있고,
오늘보다 조금 더 들어가는 밥 한 숟갈이 있고,
오늘보다 조금 더 오래 이어지는 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회복들이 하루하루 모여,
어느 날 친구님 앞에 커다란 봄처럼 서 있기를 바랍니다.
먼 훗날, 이 병상일지를 다시 펼쳐보며,
참 많이 아팠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그렇게 미소 지을 날이 반드시 오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
동경 친구님,
병은 몸을 시험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품격까지 빼앗아가지는 못합니다.
친구님은 지금 그 사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아픔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내며,
고통을 문장으로 바꾸고,
절망의 틈에서 희망 하나를 놓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병보다 큰 사람입니다.
친구님은 이미 극복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참 아름답고,
참 근사하게.
친구님의 오늘을 깊이 응원합니다.
반드시 다시 건강한 날의 햇빛 아래에서,
이 힘겨웠던 시간을 먼 이야기처럼 바라볼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원합니다.
2026, 8, 24
ㅡ청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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