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감금의 시간이 비평의 언어로 익을 때 ― 청민 박철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를 중심으로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감금의 시간이 비평의 언어로 익을 때 ― 청민 박철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를 중심으로 2026.08.26
감금의 시간이 비평의 언어로 익을 때 ― 청민 박철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를 중심으로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 이육사 시세계론

청민(靑民) 박철언

  1. 들어가며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시는 서재의 고요 속에서, 어떤 시는 여행길의 우연한 풍경 앞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어떤 시는 감금된 몸, 하루 한 장만이 허락된 종이 위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필자는 1993년 5월, 정치적 격랑 속에서 1년 4개월의 수감 생활을 겪은 바 있다. 하루에 한 장씩 허용되던 봉함엽서 위에 감옥 뜰의 국화꽃밭과 민들레꽃, 눈 내린 새벽을 적어 가족에게 보냈던 그 시간이, 뜻밖에도 필자를 시인의 자리로 이끌었다. 훗날 조병화, 박재삼 두 원로 시인의 추천으로 『순수문학』을 통해 옥중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사연은 이미 다른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이 개인적 체험은 필자로 하여금 한 시인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바로 이육사(李陸史, 1904~1944)다. 그의 삶은 옥고로 점철되어 있다. 17차례에 걸친 투옥, 그리고 마침내 이국의 감옥에서 맞은 죽음. 그의 필명 자체가 감옥에서 부여받은 수인번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가 겪은 1년 4개월의 수감과 이육사가 겪은 평생에 걸친 옥고는 그 무게와 성격에서 결코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없다. 이 점은 이 글의 뒷부분에서 정직하게 다시 짚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감금된 시간이 어떻게 언어를 낳는가”라는 물음만큼은 필자 자신의 체험을 통과했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평론은 그 물음을 실마리 삼아 이육사의 시세계로 들어가고자 한다.

  1. 이름이 된 수인번호: 264에서 陸史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 경상북도 안동,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난 그는 한학을 익히며 자란 선비 집안의 자제였다. 그런 그가 ‘이육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27년, 장진홍 의사가 일으킨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형제들과 함께 대구형무소에 처음 투옥되면서였다. 이때 그가 부여받은 수인번호가 264번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행정 기호로 남지 않았다. 그는 이 번호의 음을 따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는데, 그 한자 표기가 거쳐 온 변천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고기를 먹고 설사한다’는 뜻의 육사(肉瀉)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냉소와 거부감을 담았고, 이어 ‘역사를 죽인다’는 뜻의 육사(戮史)로 바꾸어 식민 통치의 역사를 뒤엎겠다는 혁명 의지를 노골적으로 새겼다. 그러나 이 이름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일제의 표적이 될 것을 염려한 집안 어른의 만류로, 마침내 대륙과 평정을 뜻하는 육사(陸史)로 정착한다.

이 세 번의 개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적 사건이다. 감옥이 그에게 부여한 숫자를, 그는 저항의 언어로, 다시 스스로를 지키는 신중한 언어로 벼려냈다.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이후 그는 1927년의 첫 투옥에 이어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연루되어 체포와 석방을 거듭했고,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 옥고를 치른 횟수는 17차례에 이른다. 40년 생애의 상당 부분이 감옥과 감시 속에서 흘러갔다.

  1. 몸으로 겪은 역사, 시로 예언한 미래 — 「광야」의 시간의식

이육사의 시가 특별한 것은, 그가 감금과 고문 속에서 살았음에도 그의 시가 절망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 「광야」는 오히려 아득한 태초의 시간에서 시작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뻗어나가는 예언적 구조를 지닌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전문

이 시는 세 개의 시간층을 순서대로 통과한다. 앞의 두 연은 하늘이 처음 열리던 태초의 시간, 산맥이 아직 이 땅을 범하지 못했던 신화적 시간을 불러낸다. 이어 “끊임없는 광음”과 “부지런한 계절”이 흘러 강물이 길을 여는 대목에서 시는 역사적 시간으로 옮아온다. 그리고 마지막 두 연에서 비로소 화자의 현재 — 눈 내리는 지금 — 가 등장하는데, 이 현재는 매화 향기처럼 홀로 아득한, 고립되고 궁핍한 시간이다. 시인은 이 궁핍한 현재에서 곧바로 미래로 건너뛰지 않는다. 대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자기 명령을 통해, 현재를 미래를 예비하는 파종의 시간으로 다시 규정한다. 결실은 화자 자신의 몫이 아니다. 씨를 뿌리는 이와 그것을 거두어 “목놓아 부르게” 할 백마 탄 초인은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한 존재다. 이 시차야말로 「광야」가 절망을 노래하지 않고도 식민지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던 힘이다.

이 시간의식은 이육사 시학의 핵심이다. 그는 현재의 비극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대신, 도래할 날을 앞당겨 그려 보임으로써 현실 극복의 의지를 구체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장투쟁의 경험과 언론인으로서의 현실 참여를 함께 지녔던 그가, 정작 시에서는 정치적 구호를 배제하고 상징과 은유의 언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침묵 속에 응축된 긴장, 예언적 어조,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그의 시 전체에 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겨울과 초인 사이 — 극한의 언어와 저항의 형식

이육사의 시세계는 흔히 세 갈래로 나뉘어 논의된다. 「절정」에서 드러나는 저항적 주제, 「청포도」 등에 나타나는 실향 의식과 비애, 그리고 「광야」와 「꽃」에서 보이는 초인 의지와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갈래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뻗어난 가지들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절정」전문

「절정」은 이육사의 시 가운데 가장 압축적이다. 채찍에 갈겨 북방으로 휩쓸려 왔다는 첫 연부터 이미 화자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내몰린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더 오를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극점이다. 이 시의 진짜 전환은 3연의 짧은 자문 — 어디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 에서 일어난다. 항복할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이 인식은 절망의 극단처럼 보이지만,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 연에서 뜻밖의 반전을 이룬다. 눈을 감고 마주한 이 극한의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모순어법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무지개는 본래 가장 무르고 순간적인 것인데, 그것을 가장 단단하고 차가운 강철에 포개어 놓음으로써, 시인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굴복의 자리를 오히려 응결된 의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주목할 것은 이 극한의 상황을 다루는 그의 언어가 결코 비명이나 절규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직설적 저항의 구호 대신 목가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이 처한 실상을 본질적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길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기도 했을 것이다. 검열과 감시의 눈초리 아래에서 시인은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을 상징을 통해 말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제약이, 역설적으로 그의 시를 더 깊은 울림을 지닌 언어로 벼려냈다.

  1. 잃어버린 고향의 빛깔 — 「청포도」의 실향의식과 기다림

「청포도」는 이육사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칠월이면 청포도가 익어가던 낙동강변 고향 마을의 기억을 배경으로, 이 시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이육사, 「청포도」 전문

이 시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형으로 짜여 있다 — “찾아온다고 했으니”, “좋으련”, “마련해두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 들은 약속과 준비의 언어다. 그런데도 시는 조급하지 않다. 마을의 전설이 청포도 알알이 되어 박히는 1연에서부터, 흰 돛단배가 밀려오는 풍경, 청포 입은 손님을 맞아 두 손을 함뿍 적시는 상상,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미리 마련해두라는 당부에 이르기까지, 시는 오지 않은 것을 이미 온 것처럼 살아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청포도는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마을의 전설이 알알이 맺힌 결실이며, 기다리는 손님은 광복이라는 사건의 은유로 오래도록 읽혀왔다. 정치적 열망을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 환대의 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이육사가 지녔던 시인으로서의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무장투쟁에 나섰던 행동가이자 언론을 통해 현실에 발언했던 언론인이었던 그가, 정작 시에서는 가장 낮고 다정한 목소리를 택했다는 사실은 그의 시학이 지닌 폭을 짐작하게 한다. 「절정」의 강철 같은 응결과 「청포도」의 무른 기다림은 언뜻 상반되어 보이지만, 두 시 모두 결국 같은 사람이 같은 시대를 건너며 쓴 것이다. 극한에서는 견디는 언어를, 기다림 앞에서는 살림의 언어를 — 이 폭이야말로 이육사 시학의 진짜 크기다.

  1. 시와 행동의 통일 — 의열단원이자 언론인, 그리고 시인

이육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시인으로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행동가였다. 1934년에는 관련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며, 석방 후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진 뒤에야 비로소 붓을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즉 그가 시인이 된 것은 행동가로서의 길이 좌절되어서가 아니라, 총과 무력을 대신할 또 하나의 저항의 형식으로 문학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자의식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나에게는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라는 그의 말은, 시 쓰기를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입으로 규정한다. 또한 그는 “온갖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도 시 한 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가 시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독립운동가로서의 소명과 나란히 두었음을 보여준다. 신문 기자로서 현실 문제를 기사화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상징과 은유로 벼려진 시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게 행동과 문학은 두 개의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저항을 이루는 두 개의 손이었다.

이처럼 행동과 문학이 하나로 겹쳐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평론이 출발한 개인적 체험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필자에게 옥중의 시는 정치적 행동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었지, 행동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 차이를 다음 장에서 정직하게 짚어두고자 한다.

  1. 두 개의 옥고, 다른 무게 — 정직하게 짚어야 할 차이

이 평론을 옥중 체험이라는 개인적 계기에서 시작한 이상, 두 옥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얼버무리지 않고 밝혀두는 것이 온당하다. 이육사의 열일곱 차례에 걸친 투옥은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과 언론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마침내 그는 항일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베이징의 감옥에서 마흔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는 민족과 역사 앞에 선 사상범의 고난이다.

반면 필자가 1993년 겪은 수감은 슬롯머신 업계를 둘러싼 정·관계 뇌물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데 따른 것으로, 정치적 격변 속에서 벌어진 국내 정치·사법 사건의 결과였다. 두 옥고는 그 원인에서도, 시대적 무게에서도, 역사가 부여한 자리에서도 결코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없다. 이 차이를 지우고 두 사람을 나란히 놓는 것은 이육사의 순국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이 글이 주목하고자 한 것은 그러한 정치적·역사적 등가성이 아니라, 훨씬 좁고 인간적인 차원의 공통 경험이다. 자유가 박탈된 몸, 하루하루가 통제되는 시간, 그 안에서도 언어를 놓지 않았던 두 사람의 경험이다. 감옥이라는 극한의 조건이 어떻게 한 사람을 침묵시키지 않고 오히려 시로 이끄는가 — 이 물음 앞에서만큼은, 시대도 죄목도 다른 두 사람의 체험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1. 나가며: 남는 것과 남아야 할 것

이육사는 조국 광복을 채 일 년도 남겨두지 않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의 차가운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청포도」, 「절정」 등 여러 작품을 생전에 잡지를 통해 발표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묶인 시집 한 권을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46년, 동생 이원조가 그때까지 발표되거나 남겨진 시들을 모아 『육사시집』을 펴냄으로써 비로소 그의 시세계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정작 시인 자신은 자신의 시가 이토록 오래 읽히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셈이다.

그의 시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힘은, 그가 극한 속에서도 강철을 무지개로 읽어내고, 궁핍한 현재 속에서도 백마 탄 초인을 앞당겨 불러낼 줄 알았다는 데 있다. 결실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뿌려야 할 것을 뿌리겠다는 다짐, 바로 그 다짐이 그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완성시킨 정신이다. 감금된 몸에서 태어난 언어가 시대를 건너 살아남는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이육사의 시가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건네는 가장 정직한 위로이자 다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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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의 시간이 비평의 언어로 익을 때

― 청민 박철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를 중심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지만, 어떤 시간은 끝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

철문이 열리고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뀐 뒤에도 몸속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줄의 산문이 되며 마침내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밖에 걸어 나온다.

청민(靑民) 박철언 시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 이육사 시세계론」 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이번 평론 신인문학상 당선은 단순히 한 시인이 새로운 장르에 이름을 올린 사건으로만 읽기 어렵다. 그의 당선작과 당선소감을 함께 읽으면, 오래전 감옥에 남겨두었던 한 사람의 시간이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건너 비평의 언어로 귀환한 사건에 가깝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동아리 ‘청맥’에서 시작된 문학적 인연, 시인으로 살아온 30여 년의 시간, 공직과 법조와 정치의 격랑을 통과한 생애, 1993년부터 이어진 1년 4개월의 수감 경험이 하나의 강줄기로 만나 이육사라는 거대한 문학적 산맥 앞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진정한 제목은 어쩌면 ‘이육사를 읽은 박철언’이 아니라 ‘이육사를 통하여 자신의 오래된 시간을 다시 읽은 박철언’인지도 모른다.

  1. 평론의 첫 문은 지식이 아니라 ‘부끄러움’으로 열렸다

그는 이육사의 열일곱 차례 옥고와 자신의 1년 4개월 수감 생활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적 삶과 남북문제에 관여했던 경험까지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삶을 내던진 이육사의 투쟁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평론가에게 이 거리감은 대단히 중요하다.

비평은 작품 가까이 가는 일이지만, 너무 가까이 가서 자신과 작품을 뒤섞어버리면 비평은 자기고백으로 기울어진다.

박철언은 한 걸음 다가가면서 한 걸음 물러선다.

자신의 옥고를 숨기지 않되 이육사의 옥고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다.

비평의 윤리다.

타인의 상처를 자기 상처의 증명서로 사용하지 않는 태도, 역사의 무게를 개인의 기억으로 덮지 않는 절제가 그의 첫 평론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공자가 『시경』 을 두고 사무사思無邪라 했듯, 좋은 비평 역시 먼저 마음의 삿됨을 걷어내야 한다.

비평은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기 시선을 먼저 씻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철언의 첫 평론은 지식보다 태도에서 먼저 합격점을 얻는다.

  1. 하루 한 장의 봉함엽서가 만든 문학의 뿌리

그의 평론과 당선소감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은 ‘하루 한 장’이다.

수감 생활 중 하루에 한 장씩 허용되던 봉함엽서.

그 작은 종이 위에 그는 감옥 뜰의 국화꽃과 민들레, 눈 내린 새벽을 적어 가족에게 보냈다고 한다.

참 묘한 일이다.

자유가 가장 적었던 때, 사물은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국화 한 송이가 벽 안에서는 하나의 계절이 되고, 민들레 한 포기가 자유의 얼굴이 되며, 눈 내린 새벽은 철창 바깥 세상과 이어지는 흰 통로가 되었을 것이다.

문학은 때로 풍요 속에서보다 결핍 속에서 더 날카롭게 태어난다.

종이가 많을 때는 아무 문장도 쓰지 못하다가 단 한 장만 허락되면 한 글자까지 아껴 쓰게 된다.

자유가 넘칠 때는 하늘을 잊어버리지만 창문의 크기가 작아지면 하늘 한 조각이 우주가 된다.

박철언에게 감옥은 문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었다.

그렇게 미화해서도 안 된다.

다만 역설적으로 그 극한의 시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초점을 바꾸었다.

그 한 장의 엽서는 시인이 되는 첫 원고지가 되었다.

훗날 조병화, 박재삼 두 원로 시인의 추천으로 『순수문학』 을 통해 옥중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상징적이다.

감금이 시인을 만든 것은 아니다.

감금 속에서도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시인이 된 것이다.

이 차이는 크다.

고통 자체가 문학은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어떤 언어로 바꾸며, 무엇을 남에게 건네느냐가 문학이다.

  1. 이육사의 ‘감옥’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읽어낸 힘

박철언의 이육사론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감옥을 단순한 공간으로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붙인 제목부터 그렇다.

‘감금된 공간’이 아니라 ‘감금된 시간’이다.

감옥이 인간에게서 빼앗는 가장 무서운 것은 몇 평의 공간이 아니다.

자기 시간이다.

언제 일어날지

언제 걸을지

언제 사람을 만날지

언제 편지를 쓸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

몸을 가둔다는 것은 시간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이러한 체험을 통과한 사람이기에 박철언은 이육사의 「광야」 를 시간의 시로 읽는다.

「광야」 에는 태초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천고 뒤의 미래가 있다.

한 편의 짧은 시 속에서 시간이 수천 년을 건넌다.

중요한 것은 현재다.

현재는 눈 내리고 매화 향기만 홀로 아득한 궁핍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육사는 그 현재를 절망의 종착역으로 두지 않는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자리로 바꾼다.

박철언의 표현처럼 현재를 ‘미래를 예비하는 파종의 시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해석은 이육사의 저항정신을 구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읽어낸다.

저항은 반드시 주먹을 드는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에도 씨를 뿌리는 일 역시 저항이다.

결실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파종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역사 앞에서 가장 외로운 농부다.

이육사는 바로 그런 농부였다.

그가 뿌린 것은 곡식이 아니라 미래였다.

  1. ‘강철로 된 무지개’

― 절망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연금술

박철언은 「절정」 을 읽으며 ‘무릎 꿇을 자리조차 없는 인간’을 본다.

이 해석은 상당히 날카롭다.

보통 인간은 극한에 몰리면 마지막으로 굴복할 자리를 찾는다.

「절정」 에서는 그 자리마저 없다.

한 발 물러설 곳도 없고 무릎을 내려놓을 땅도 없다.

그때 등장하는 문장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다.

강철과 무지개는 서로 만나기 어려운 두 사물이다.

강철에는 무게가 있다.

무지개에는 무게가 없다.

강철은 차갑고 붙잡히지만 무지개는 빛나고 사라진다.

이육사는 그 둘을 한 문장 안에 결혼시켰다.

바로 그 낯선 결합에서 시가 탄생한다.

박철언의 평론은 이것을 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낸 언어적 반전으로 읽는다.

여기에 이육사의 시적 비밀이 있다.

강철만 있었다면 혁명문이 되었을 것이다.

무지개만 있었다면 서정시가 되었을 것이다.

강철과 무지개가 함께 있었기에 이육사의 시가 되었다.

저항과 아름다움.

결기와 서정.

역사와 미학.

이육사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균형을 포착한 것은 박철언 평론의 중요한 성과다.

  1. 청포도는 왜 그토록 오래 그의 곁에 있었는가

박철언 시인이 문학의 자리에서 이육사의 「청포도」를 자주 읊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이번 평론을 다시 읽으면 묘한 문학적 인연이 보인다.

애송하던 시가 세월을 건너 마침내 평론 등단작의 중심에 놓였다.

청포도 한 송이가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평론 한 편으로 익은 셈이다.

그가 「청포도」 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기다림이다.

청포 입은 손님을 맞기 위해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는 마음.

광복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망이 깃발과 함성이 아니라 식탁으로 내려온다.

이것이 이육사다.

독립을 선언하지 않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역사를 생활로 바꾼다.

혁명을 환대로 바꾼다.

박철언은 이를 ‘생활의 언어, 환대의 언어’로 읽어낸다.

좋은 해석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광야」와 「청포도」는 사실 같은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광야」 에서는 씨를 뿌린다.

「청포도」 에서는 식탁을 차린다.

둘 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다.

이육사의 시는 기다림의 시가 아니다.

준비의 시다.

미래가 오기를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올 자리를 현재 안에 미리 마련한다.

씨앗을 묻고

쟁반을 닦고

모시 수건을 펼쳐놓는다.

바로 이것이 이육사의 예언이다.

예언은 미래를 맞히는 일이 아니다.

미래가 올 만한 인간이 되어 기다리는 일이다.

박철언의 평론이 ‘예언의 언어’라는 제목을 얻은 이유도 이 지점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1. 여든넷의 신인

― 이 모순이 아름다운 까닭

박철언은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청맥’ 이후 60여 년, 시인으로 등단한 뒤 30여 년 만에 평론가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얻었다고 적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신인’이다.

“여든다섯의 신인.”

얼마나 아름다운 모순인가.

생물학적으로는 노년인데 문학적으로는 신인이다.

이미 수많은 직함을 가졌던 사람이 다시 맨 앞줄에 서서 신인의 이름표를 단다.

보통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가진 이름을 지키려 한다.

새로운 이름 앞에서는 실패를 걱정한다.

기존의 명예가 새로운 도전을 막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박철언은 그 울타리를 넘었다.

이것이 이번 등단의 또 다른 의미다.

大器晩成은 큰 그릇이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지만, 문학에서는 조금 달리 읽어도 좋겠다.

큰 그릇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늦도록 비어 있을 줄 아는 그릇이라고.

새것을 받아들일 빈자리를 남겨두는 사람만 여든다섯에도 신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젊음보다 귀한 정신이다.

문학에는 정년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학에는 최종 학년도 없다.

시인이 평론가가 될 수 있고

평론가가 소설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으며

아흔에도 처음 쓰는 문장이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생애를 한 장르에 가두는 일 역시 또 하나의 감금일지 모른다.

박철언은 이번 등단으로 자신의 문학적 감옥 하나를 더 열었다.

  1. 다음 평론에서 더 깊어져야 할 곳

― ‘생애’에서 ‘언어’로

첫 평론으로서 진정성과 체험의 힘은 충분하다.

다음 단계에서 더 깊어질 지점도 분명하다.

박철언의 글은 이육사의 생애와 시대정신을 읽는 데 강하다.

앞으로는 시 자체의 언어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가령 「광야」 에서 ‘까마득한 날’과 ‘천고의 뒤’ 사이의 거대한 시간적 간극이 어떻게 리듬을 만드는지, 「절정」 에서 ‘북방―고원―서릿발’로 이어지는 공간이 어떻게 점차 인간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지, 「청포도」 의 청색과 백색이 어떤 색채 심리와 정서적 청결감을 형성하는지 등을 더 정밀하게 살핀다면 그의 비평은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평론은 시인의 삶을 읽는 일이지만 결국 한 단어를 읽는 일이다.

시인의 사상은 작품 바깥에 걸린 현수막이 아니다.

조사 하나에도 들어 있고

어미 하나에도 숨어 있으며

한 줄을 어디에서 끊었는가에도 스며 있다.

삶을 오래 본 눈에 언어를 세밀하게 보는 현미경까지 더해진다면 박철언 평론의 독자성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쉽게 얻을 수 없는 자산이 있다.

살아본 세월이다.

이제 그 세월의 망원경에 언어의 현미경을 하나 더 달면 된다.

  1. ‘한국문학의 창달과 세계화’라는 다짐 앞에서

박철언은 당선소감의 마지막에서 한국문학의 창달과 세계화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은 상투적인 당선 포부로 지나칠 수도 있다.

그의 나이와 생애를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여든다섯에 새 장르에 들어선 사람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자기 이름을 더 높이는 데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에 보태겠다고 말한다.

문학의 노년은 소유보다 환원이어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쌓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살아본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무엇인가 남기는 일.

경험을 훈계로 넘기지 않고 이야기로 넘기고

권위를 명령으로 넘기지 않고 성찰로 넘기며

세월을 회고로만 소비하지 않고 새로운 창작의 자원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평론은 종착역이 아니었으면 한다.

소설도 좋다.

자전적 서사도 좋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가 실제로 만나고 보았던 사람과 사건들은 기록으로만 남겨두기에는 너무 많은 인간적 얼굴을 품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사건을 기록하지만 소설은 사건 속에서 떨던 손을 기록한다.

법은 판결을 남기지만 문학은 판결 뒤에 홀로 돌아가던 사람의 등을 남긴다.

정치는 승패를 적지만 소설은 승자와 패자가 돌아간 빈방의 밤을 적는다.

박철언에게 아직 쓰지 않은 문학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1. 감옥을 빠져나온 것은 결국 ‘언어’였다

이육사는 베이징의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몸은 돌아오지 못했다.

「광야」 는 돌아왔다.

「절정」 은 돌아왔다.

「청포도」 는 돌아왔다.

철문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시였다.

박철언 역시 오래전 수감생활에서 하루 한 장의 엽서를 썼다.

국화와 민들레와 눈 내린 새벽을 적었다.

그때의 엽서는 어느 날 시가 되었고, 수십 년 뒤에는 이육사를 읽는 비평적 감각의 뿌리가 되었다.

시간은 참 묘하다.

당시에는 불행으로만 보였던 한 순간이 훗날 문학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물론 불행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상처가 있다고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무엇으로 바꾸었는가이다.

누군가는 원망으로 남긴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묻는다.

누군가는 한 장의 엽서에 국화꽃을 적는다.

문학은 바로 그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육사는 광야에 노래의 씨를 뿌렸다.

박철언은 감옥의 작은 엽서에 문장의 씨를 뿌렸다.

두 씨앗은 역사적 크기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그 차이를 지우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같다.

씨앗은 자신이 어느 날 꽃이 될지 알지 못한 채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맺음말

ㅡ늦게 얻은 청력으로 시대의 심장소리를 듣다

청민 박철언의 「감금된 시간, 예언의 언어」 는 아직 완결된 이육사론이라기보다 한 노년 문인이 비평의 문턱을 넘어서는 첫걸음으로 읽는 것이 더 온당하다.

그 첫걸음은 가볍지 않다.

자신의 옥중 체험을 비평의 출발점으로 삼되 이육사의 항일 옥고와 역사적 차이를 분명히 했고, 「광야」 에서 미래를 향한 파종을, 「절정」 에서 굴복할 자리마저 사라진 인간의 결기를,

「청포도」 에서 도래할 미래를 위한 환대의 정신을 읽어냈다.

당선소감은 그 평론의 속살을 한층 더 드러낸다.

‘부끄럽다’ 는 첫 문장과 자신의 체험을 이육사와 나란히 놓아도 되는가 자문했던 대목에서 한 신인 평론가가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을 본다.

겸손이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말하는 예절이 아니다.

대상의 크기를 정확히 인정하는 능력이다.

여든다섯에 다시 ‘신인’이 된 사람을 두고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

늦게 핀 꽃에는 꽃잎보다 계절이 많이 들어 있다.

박철언의 문장에는 공직자의 시간과 법조의 시간, 정치의 풍랑과 수감의 기억, 시인으로 살아온 30여 년이 겹쳐 있다.

그 세월이 이제 비평이라는 새로운 그릇으로 옮겨지고 있다.

앞으로 그의 평론이 생애적 공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의 세부와 미학적 구조까지 치밀하게 파고든다면, 한국문단에서 보기 드문 ‘연륜의 체험비평’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에게 이제 한 가지를 더 권하고 싶다.

평론의 문에서 멈추지 마시기를.

소설의 문도 열어보시기를.

한평생 만난 사람과 사건을 연대기가 아니라 인간학으로 다시 써보시기를.

법정에서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침묵을 소설에서는 들을 수 있고, 정치의 회의록에서 지워진 눈빛을 문학은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에 귀를 대는 사람이다.

평론가는 타인의 문장에 귀를 대는 사람이다.

소설가는 시대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의 발소리에 귀를 대는 사람이다.

청민 박철언에게는 아직 그 귀로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문학의 자리에서 즐겨 읊던 이육사의 청포도는 이제 조금 다른 빛깔로 익었다.

한 알은 시가 되었고

한 알은 기억이 되었으며

한 알은 평론이 되었다.

아직 송이 끝에 몇 알이 더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소설이어도 좋겠다.

문학에는 황혼이 없다.

해가 지는 곳에서

문장은 때로

비로소 첫 줄을 시작한다.

청민 박철언 평론가의 새로운 출발을 다시 한 번 깊이 축하드린다.

그리고 기대한다.

여든다섯의 신인이 앞으로 보여줄 문학의 다음 문을.

사람의 나이는 세월이 세지만

문장의 나이는 첫 문장을 쓰는 날부터 다시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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