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고향을 잃고도 시를 잃지 않은 사람 ― 김선영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향을 잃고도 시를 잃지 않은 사람 ― 김선영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2026.08.30
고향을 잃고도 시를 잃지 않은 사람 ― 김선영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 김선영 시인

□ 김선영 시인 시집

고향을 잃고도 시를 잃지 않은 사람

― 김선영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 어떤 시인은 고향을 떠났고, 어떤 고향은 시인 안에 남았다

한 사람이 고향을 잃으면 지도를 잃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어린 날이 묻힌 흙을 잃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물던 골목을 잃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주소를 잃는다.

김선영 시인의 생애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잃어버린 주소’다.

1938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했다. 어린 시절의 공간은 물리적으로 끊겼지만, 그 단절은 외려 그의 시 속에서 오래도록 그리움과 귀소歸巢의 감각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개성시 고려동에서 태어났으며 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했다. 이후 서울사범과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된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선명해지고, 만질 수 없기에 더 깊어진다.

김선영 시인의 시에서 달, 꽃, 나무, 어머니, 고향, 물, 길 같은 자연적 이미지가 자주 출현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집 《달을 배웅하며》에는 달과 고향, 가족, 꽃, 귀소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출판 소개에서도 달은 생의 동반자이자 그리움과 인간의 본질적 고독을 담는 시적 대상으로 설명된다.

그에게 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표가 아니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마음속에 다시 심는 일이었다.

Ⅱ. 전쟁이 빼앗아간 것과 문학이 돌려준 것

전쟁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빼앗는다.

집과 학교와 친구와 이웃을 빼앗고, 한 아이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일상의 연속성마저 끊어놓는다.

김선영 시인에게도 분단과 피란은 단순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첫 문장이 갑자기 중간에서 잘린 경험이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눈앞의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찍 배운다.

집도 사라질 수 있고, 고향도 사라질 수 있으며, 어제까지 곁에 있던 풍경도 하루아침에 국경 너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다.

이러한 생애적 경험은 훗날 김선영 시의 바탕에 놓인 상실과 그리움, 허무와 생명의 감각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의 시집 제목만 보아도 흥미롭다.

《허무의 신발가게》, 《풀꽃제사》, 《환상의 문지기》, 《밤에 쓴 말》, 《라일락나무에 사시는 하느님》, 《사모곡》, 《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작파하다》, 《달을 배웅하며》.

제목마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의 긴장이 있다.

허무가 있으면서도 꽃이 있고,

쓸쓸함이 있으면서도 달이 있으며,

사라짐 곁에 여전히 생명이 남아 있다.

이것이 김선영 시인 시의 중요한 미학적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상실을 절망의 끝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상실을 한참 바라본 끝에 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작은 생명을 발견한다.

전쟁이 그의 고향을 빼앗았다면, 문학은 그에게 고향을 다시 만드는 방법을 돌려주었다.

Ⅲ. 소녀 시인

― 문단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시가 먼저 찾아왔다

김선영 시인의 문학적 출발은 매우 이르다.

서울사범 재학 시절 이미 《동아일보》 고등학생 문예란에 여러 작품을 발표했고, 《여원》 창간 2주년 문예 현상모집에서는 시 「달」 이 당선되었다. 고려대학교 주최 전국 고등학생 문예작품 현상모집에서는 「파랑새」가 수석 당선되었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그에게 시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이 아니었다.

이미 청소년기부터 자기 안에서 자라던 언어였다.

학교에서 국문학을 배우기 전에 시가 먼저 그의 가슴속에서 문을 열고 나온 셈이다.

1957년 「파랑새」 가 《현대문학》 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실렸고, 이후 「메아리」와 「계절의 낙서」를 거쳐 1962년 추천이 완료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나섰다.

한 시인이 문단에 들어오는 데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제도가 열어주는 문이다.

등단이라는 문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열어야 하는 문이다.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이다.

김선영은 두 번째 문을 더 오래 통과했다.

등단 후 60년이 넘도록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문단에 들어가는 것은 재능으로 가능할 수 있다.

여든을 넘긴 뒤에도 시를 쓰는 것은 재능만으로는 어렵다.

그것은 생애 전체를 시에 바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Ⅳ. 청미靑眉

― 여성 시인들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문학적 방

1963년 김선영 시인은 한국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에 참여한다.

여성 시인 동인 ‘청미’의 창립이다.

학술 연구에서는 청미가 최초의 여성 시동인지 《돌과 사랑》을 발간한 동인으로 평가되며, 1960년대 한국 여성문학의 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김선영 시인은 이 청미의 창립동인이었다. 그의 초기 시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김선영 시인을 1960년대 선구적 여성 시동인 청미의 창립동인으로 명확히 평가하고 있다.

당시 한국 문단의 중심은 남성 중심적이었다.

여성 문인이 작품을 발표하는 일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 시인들이 스스로 동인을 결성하고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단순한 친목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언어를 놓을 책상 하나를 직접 만든 일이었다.

문단의 큰 방 한쪽에 자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 하나를 열고 자신들의 방을 만든 것이다.

《동아일보》 도 청미를 우리 문단 최초의 여성 시인 동인회로 소개하며, 결성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활동이 이어졌음을 조명했다.

청미의 의미는 여기에서 깊어진다.

문학은 작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품이 태어날 수 있는 공간과 동료와 연대가 필요하다.

김선영 시인은 자신의 시만 쓴 사람이 아니라 여성 시인들이 함께 쓸 수 있는 문학적 공간을 만든 세대에 속한다.

Ⅴ. 피부로 세계를 읽는 시

― 김선영 시인 초기시의 독특한 미의식

김선영 시인의 초기 시를 다룬 학술 연구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피부 감각’이다.

한 연구는 그의 1960~70년대 시에서 이성 중심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언어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그의 초기 시적 주체를 ‘피부’의 감각과 연결하여 해석한다.

이것은 김선영 시인 시의 독특한 면모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피부는 세계와 몸이 처음 만나는 장소다.

바람은 피부에 먼저 닿는다.

추위도 그렇고,

햇빛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도 그렇다.

피부는 철학보다 먼저 세계를 안다.

김선영 시인의 시가 관념을 먼저 세우기보다 달빛과 꽃과 물과 나무와 몸의 감각으로 세계에 접근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시는 세계를 머리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꽃이 단순한 꽃이 아니고,

달이 단순한 천체가 아니며,

나무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인의 기억과 외로움과 고향과 사랑을 만지는 감각의 기관이 된다.

이런 면에서 김선영 시인의 시는 ‘사물에게 마음을 입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자연에 투사하는 정도를 넘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운다.

달이 사람을 바라보고,

나무가 기억을 품으며,

꽃이 한 사람의 오래된 고독을 대신 말한다.

그곳에서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인격이 된다.

Ⅵ. 교수 김선영

― 한 사람의 시가 강의실에서 수백 사람의 언어가 되다

김선영 시인의 삶에서 또 하나 중요한 축은 교육이다.

그는 1976년부터 2001년까지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5년이라는 시간이다.

시인이 자기 작품을 쓰는 것과 학생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것은 서로 다른 노동이다.

전자는 자기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고,

후자는 타인의 가능성을 기다리는 일이다.

한 편의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자기 언어가 중요하다.

교수에게는 학생의 언어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국문학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김선영의 문학적 생애를 단순히 창작자의 삶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남긴 사람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후학의 문장 속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긴 교육자였다.

좋은 스승의 흔적은 논문 목록만으로 남지 않는다.

어느 학생이 평생 책을 읽게 된 계기,

어느 젊은이가 처음 시를 믿게 된 순간,

자기 문장을 부끄러워하던 학생이 다시 한 줄을 쓰게 된 용기로 남는다.

그런 흔적은 기록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 안에 오래 남는다.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씨앗을 세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어디에서 꽃필지 모르는 씨앗을 오래 심는 일이다.

김선영 시인이 세종대학교에서 보낸 25년은 그런 시간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Ⅶ. 긴 문학적 생애

― 오래 쓴다는 것은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김선영 시인은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산문집을 펴냈다.

한국시인협회가 소개한 자료에는 《풀꽃왕관》, 《달을 배웅하며》, 《작파하다》, 《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사모곡》, 《라일락나무에 사시는 하느님》, 《밤에 쓴 말》, 《환상의 문지기》, 《풀꽃제사》, 《허무의 신발가게》, 《사가》 등이 열거되어 있다. 시선집으로는 《그리움의 식물성》, 《누구네 이중섭 그림》, 《달빛해일》, 《달을 빚는 남자》 가 소개되어 있다.

1973년 장시 「탈출하는 살」 로 현대시학 제4회 작품상을 받았고, 2008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에도 시집 《그림 속 나무》 가 소개되었다.

이 점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문학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생존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언어가 한 시대의 유행 속에서 굳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자신을 흔드는 일이다.

젊은 날의 성공은 때로 작가에게 가장 위험한 의자가 된다.

한 번 인정받은 문체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자신이 만든 문체의 박물관장이 되기 쉽다.

김선영 시인은 오랜 세월 새로운 시집을 내며 그 의자에서 거듭 일어났다.

꽃을 쓰고,

달을 쓰고,

허무를 쓰고,

고향을 쓰면서도

매번 다른 시간의 몸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달이라도 스무 살의 달과 여든 살의 달은 같을 수 없다.

시인은 달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삶의 깊이로 달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사람이다.

Ⅷ. 제1회 한국여성문학인상

― 한 사람에게 주어진 상이 아니라 한 시대를 향한 답례

2026년 한국여성문학인회는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제정한 제1회 한국여성문학인상의 첫 수상자로 소설가 한말숙과 시인 김선영 시인을 선정했다. 당시 김선영은 88세로 소개되었다.

이 수상은 단순히 최근 작품 몇 편에 대한 평가만으로 읽기 어렵다.

1960년대 청미 동인으로 여성 시인들의 문학적 공간을 개척한 일,

60년 넘게 작품을 써온 시간,

대학에서 후학을 길러온 시간,

여성문학의 한 세대를 몸으로 통과한 생애 전체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크다.

한 사람의 문학적 생애에는 이상한 시간이 흐른다.

젊을 때는 미래를 향해 쓴다.

중년에 이르면 오늘을 견디기 위해 쓴다.

노년에 이르면 지나온 시간이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때 상은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을 지나온 세월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김선영 시인의 제1회 한국여성문학인상은 그런 상에 가깝다.

Ⅸ. 김선영 시의 생애적 가치철학

― 상처를 꽃으로 번역하는 능력

김선영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중요한 정신이 보인다.

삶의 상처를 그대로 상처로 남겨두지 않는 힘이다.

개성에서의 유년,

전쟁과 피란,

분단으로 끊어진 고향,

여성 문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던 시대,

한평생 이어진 창작과 교육.

그의 생은 결코 평탄한 한 줄의 문장이 아니었다.

여러 번 줄이 끊겼고,

페이지가 찢겼으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단이 바뀌었다.

그런데 그는 찢어진 페이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 위에 시를 썼다.

이것이 김선영 문학의 가장 중요한 생애적 가치철학이라 생각한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움을 달로 번역하고,

고향을 꽃으로 번역하며,

허무를 신발로 만들고,

쓸쓸함을 한 그루 나무로 세워놓는 것.

시인이란 아픔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아픔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그 이름을 얻는 순간 개인의 상처는 문학이 된다.

Ⅹ. 맺음말

― 오래된 나무는 꽃보다 그늘로 기억된다

김선영 시인의 문학적 생애를 생각하면 한 그루 오래된 나무가 떠오른다.

그 나무는 개성의 흙에서 처음 뿌리를 내렸다.

전쟁이 뿌리를 뽑았다.

남쪽으로 옮겨 심어졌다.

낯선 흙에서 다시 뿌리를 내렸다.

서울사범의 교정에서 젊은 가지가 자랐고,

《현대문학》 이라는 문단의 햇빛을 받았다.

청미라는 숲에서 다른 여성 시인들과 가지를 맞댔고,

세종대학교 강의실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씨앗을 나누었다.

세월은 그 나무의 껍질을 거칠게 만들었겠지만,

시의 속살까지 늙게 하지는 못했다.

2026년 제1회 한국여성문학인상은 그 오래된 나무에 뒤늦게 매달린 훈장이 아니다.

그 나무 아래 오래 쉬어간 한국문학이 건넨 감사의 인사에 가깝다.

김선영 시인의 문학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보여준다.

고향을 잃어도 사람은 고향을 품고 살 수 있으며,

세월이 늙어도 시심까지 늙을 필요는 없다는 것.

한평생 문학을 한다는 것은 좋은 시 몇 편을 남기는 일만이 아니다.

자기 삶 전체를 한 편의 긴 시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김선영 시인의 생애는 그 긴 시의 한 전범이다.

그의 시 속에서 달은 아직 지지 않았고,

개성의 오래된 골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며,

전쟁으로 뽑힌 나무 한 그루는 남쪽 땅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이제 그 꽃보다 더 귀한 것이 남아 있다.

그늘이다.

젊은 시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

후학이 자기 언어를 찾기까지 기다려주는 그늘,

한국 여성문학의 지난 시간을 품어주는 깊은 그늘이다.

오래 산 나무의 위대함은 얼마나 높이 자랐는가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그늘을 내어주었는가에 있다.

김선영 시인의 문학적 생애가 아름다운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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