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식 작가의 '전기밥솥'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전기밥솥 이종식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졌다. 집 안 가득 나무들 사이로 매미들의 합창이 진하게 울려 퍼진다. 무르익어가는 단감과 사과, 무화과와 대추는 각종 새들에게 차려진 뷔페 식단이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들여놓은 젊은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전기밥솥 이종식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졌다. 집 안 가득 나무들 사이로 매미들의 합창이 진하게 울려 퍼진다. 무르익어가는 단감과 사과, 무화과와 대추는 각종 새들에게 차려진 뷔페 식단이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들여놓은 젊은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마스크 쓴 아이의 얼굴 ㅡ기저귀보다 먼저 찬 마스크 코로나는 우리를 슬프게 했다. 슬픔은 아픈 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두 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한 아이의 얼굴에서 시작되었다. 두세 살 남짓, 기저귀보다 마스크를 먼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긍정의 숨결 긍정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는 눈이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한 줄기 길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절망이 눈앞을 가려도 긍정의 숨결은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이 숨결은 희망을 잉태하고, 희망은 다시 길을 만든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포용의 바다 바다는 늘 제 몸보다 큰 것을 품는다. 강물이 흘러와도 거부하지 않고, 비가 쏟아져도 받아들이며, 심지어 쓰레기마저 삼킨다. 그럼에도 다시 파도를 내보내고 해안을 씻어낸다. 포용은 바로 그 바다의 마음을 닮아 있다. 모래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침묵의 별 밤하늘의 별은 말하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빛을 내지만, 그 빛을 스스로 설명한 적은 없다. 침묵 속에서 존재하며, 침묵 속에서 길을 비춘다. 사람의 삶도 침묵의 순간에 더 깊어진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은 …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질투의 불길 질투는 보이지 않는 불씨다. 겉으로는 잠잠한 듯 보이나 속에서는 서서히 열을 품는다. 작은 틈을 타고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질투는 마음을 가득 메우며 이내 불길로 번져간다. 불길은 타인을 겨냥한 듯하지만 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마음의 씨앗 한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을 움직인다. 한순간 품은 생각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파문을 만들고, 그 파문은 둥글게 퍼져나가다가 다시 마음의 주인에게 되돌아온다. 그 이치가 삶을 짓고, 가정을 세우고, 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마음 세상은 끊임없이 울림을 주고받는 그물망과 같다. 사람이 내는 마음 하나하나는 고요한 물 위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파장을 일으키고, 그 파장은 멀리 퍼져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마음을 낸 주인에게 닿는다. 그렇기에 마음은 단순히 개인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아버지의 지게 아버지의 지게는 또 하나의 척추였다. 등에 걸린 순간 아버지는 땅과 맞닿은 기둥이 되었다. 멍에는 어깨뼈에 새겨진 글씨, 삶의 무게가 새겨놓은 이름표였다. 발자국마다 지게는 집을 세웠고 가족은 그 지붕 아래서 숨 쉬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어머니의 밥상 어머니는 언제나 밥상 밑 방바닥에 이빨 빠진 밥사발을 놓으셨다. 찬밥에 물을 부어 서너 숟가락 억지로 밀어 넣고 꿀꺽 삼키면 그것으로 한 끼가 끝났다. 우린 몰랐다. 그 소박한 장면이 눈물의 기록인 줄을. 큰누이가 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독서와 사색, 여행의 길 위에서 책을 읽는 일은 삶의 출발점이다. 한 권의 책을 펼칠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언어와 사상을 마주한다. 그 만남이 곧바로 삶이 되지는 않는다. 책은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이다. 그 재료가 온전히 나의 것이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이런 삶은 어떨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갈등과 마주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가시가 되어 돌아오고, 작은 오해가 마음을 깊이 흔들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미움이 아니라 이해이고, 배척이 아니라 용서다. 누군가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벌초하는 모습 ■ 벌초, 빗물 속의 정성 벌초의 날, 산자락에 비가 내린다. 흙길은 젖고, 풀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반짝인다. 궂은 날씨라 해서 후손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날씨에 매이지 않는다. 비는 단지…
철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청람 김왕식 ■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간이라는 단어에서 이제 인간다움이 지워지고 있다. 생명을 가진 자라는 생물학적 정의는 남았지만, 존재의 품격은 점점 퇴색된다. 지구는 연결되었으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무너진 탑 ― 높이의 끝에서 남는 것 폐사터 언덕에 돌탑이 있었다. 층층이 올린 돌이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기단은 기울었고 옥개석 가장자리는 깨졌다. 탑신의 돌들 사이로 억새가 자랐다. 바람이 불자 풀잎이 돌틈을 스쳤다. 소리는 낮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바람이 지나간 자리 산허리를 스쳐 내려온 바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흔들린 나뭇잎과 기울어진 풀잎만이 방금 전의 일을 증언할 뿐, 바람은 이미 다른 골짜기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떠난 것을 붙잡으려 하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물이 멈춘 순간 물은 흐르면서도 제 모습을 말하지 않는다. 돌을 만나면 모서리를 감싸고, 깊이를 만나면 조용히 가라앉는다. 어느 순간 흐름이 멈추면, 물은 갑자기 하늘을 온전히 품는다. 움직임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구름과 달빛이 잔면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연작소설 《피란길》 제16장 다리 위의 그림자 달삼 가족은 새벽녘에 다시 길을 떠났다. 초가집에서 얻은 죽 덕에 아이들이 잠시 기운을 차렸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길은 남쪽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 강이 있었다. 강은 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피란길 청람 김왕식 전쟁이 났다. 가까이서 총성이 들려왔다. 땅이 떨렸다. 마을 사람들은 급히 모두 짐을 꾸렸다. 나도 마루에 걸린 자루를 꺼내 아내와 함께 옷가지와 쌀 한 됫박을 쓸어 담았다. 아이들이 울었다. 딸애는 엄마 치마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아! 이어령 선생 ㅡ죽음이 남긴 한마디, 지금을 사랑하라 □임종 직전의 이어령 선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석학 이어령 선생이 암투병 중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여러분, 지금을 사랑하세요”라는 울부짖음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김왕식 연작소설 《피맛골 사람들 》 3편 ― 변주승, 기타를 든 사내 밤은 길다. 무대는 낮다. 불빛은 싸구려다. 전구가 깜박거린다. 담배 연기가 천장에 붙는다. 술잔이 비어 간다. 손뼉 소리가 눅다. 변주승은 검은 기타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잠시 멈추어도 된다. 잠시 멈추어도 된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다. 길은 곧게 뻗지 않는다. 길은 굽고, 끊기고, 때로는 길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외려 길을 살아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침묵으로 건네는 위로 상처는 인간의 몫이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다친다. 말로도, 눈빛으로도, 침묵으로도 마음은 베인다. 드러나지 않으려 애써도 상처는 깊은 곳에서 곪아간다. 그 앞에서 가벼운 위로는 무력하다. 다친 자리를 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느림의 향기 바쁘게 살면 시간은 화살이 된다. 쏘아 올린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몸을 가르며 앞으로만 달린다.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자아는 점점 흐려진다. 삶의 중심이 뒤로 밀려나고, 나는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한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