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걷는 사람에게만 문을 연다 ― 허태기 시인의 「새벽 길」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새벽 길 시인 청강 허태기 거뭇한 하늘 별과 숲이 잠든 시각 풀섶 사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귀뚜라미 합창 노란 불빛 타고 물결치는 나뭇잎 살갗 스치는 바람결 긴 호흡 들이키며 강물 조는 새벽 사유의 문 열고 가만히 걷는다. 2026. 8…
■ 새벽 길 시인 청강 허태기 거뭇한 하늘 별과 숲이 잠든 시각 풀섶 사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귀뚜라미 합창 노란 불빛 타고 물결치는 나뭇잎 살갗 스치는 바람결 긴 호흡 들이키며 강물 조는 새벽 사유의 문 열고 가만히 걷는다. 2026. 8…
■ 도토리 생각 시인 이규원 능력도 貧한자가 분수도 모르면서 함부로 앞장서서 문학방 쪼개 놓고 멍 하니 정신줄 놓고 내 몰라라 하느냐 ■ 도토리 한 알로 건드린 공동체의 龜裂 ― 이규원 시인의 「도토리 생각」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 깡녀 시인 신계전 복구지원단으로 고향에 와서 다른데 눈 돌릴 틈이없었다 정작 고종사촌 오빠에게는 전화도 못하고.국제문단 고문님께 전화드리고. 저녁에야 숙소에서 한국시조협회 전 통영 지부장님께 전화드렸더니 대뜸 아침을 사주시겠딘고하셔서 너무 고맙지만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한 풍경 시인 김왕식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청발산 둔덕에 고즈넉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멀리 산등성이가 오후의 빛 속에서 …
□ 신계전 원로 시인 ■ 빼다지 시인 신계전 남몰래 가슴속에 소중하게 지난 파문 살며시 귀기울여 눈감은 채 다가서면 몽돌이 구르는 소리 그 안에서 들린다 울어도 소용없는 지난 일은 묻어 두고 죽을 힘 다하도록 살아야 할 내일 앞에 용케도 버티어 왔다.…
□ 정다운 시인 ■ 가을엔 가을이 시인 정다운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으로 들게 하소서 파아란 하늘 하얀 양떼구름으로 오게 하소서 가을향기 한가득 머금은 들국화 향기로 피어나게 하소서 기억을 흔드는 처연한 빗소리로 오게 하소서 붉은 단풍 …
■ 딱풀 시인 조홍래 그녀는 어디서든 딱 달라붙어 있었다 운명처립 떨어질 수 없는 마주침이었으니까 그날 밤 그녀는 단풍나무 아래 오래 말라 있던 나뭇잎처립 굳어 있었다 당신의 손끝이 입술처럼 닿는 순간 그녀는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디 하얗고 부드러운 …
시간을 넘겨줄 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시간을 넘겨줄 때 매미는 여름을 다 울고서야 울음도 빌린 것이었음을 안다 뜨거운 목청 하나로 숲을 붙들고 있었으나 계절은 이미 가을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마지막 울음이 나뭇가지에서 녹슬 …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제자리 뛰기 발은 수없이 땅을 떠났는데 몸은 같은 자리에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헛수고라 부른다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고 한 치 앞에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쉽게 말한다 제자리에서 뛰어본 사람은 안다 떠남 없이도 몸은 뜨거…
― 하늘 높이 날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비상 ― 하늘 높이 날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버린 것들의 위에 있다 한 사람이 오래 붙들고 살던 이름을 내려놓고 자랑 하나를 접고 미움 하나를 풀어놓을 때마다 등 뒤에서는 보이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 새벽이 풀잎 끝에 은빛 한 생을 매달아 놓았다 해가 뜨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로 돌아갔다 꽃잎 하나 물 위에 내려앉는다 물은 꽃을 붙잡지 않고 꽃도 물에게 머물 곳을 청하지 않는다 잠시 서로를 비추고 …
□ 정덕현 시인 ■ 구름 과자 시인 靑雲. 丁德鉉 당신은 구름 과자를 알고 계시나요? 구름 과자는 옛날에는 어른들이 즐겨 먹었습니다 하나 요즘 세상에는 여자들 어린애들도 즐겨 먹고 있는 세상이래요 과자는 원래 간식으로 입이 궁금할 때 하지만 구름과자는 …
■ 늦여름 안부 시인 青民 박철언 여보게, 그여름 어떠했는가 폭염이 할퀴고 간 자리 아직도 얼얼한가 퍼붓던 비에 마음의 둑 하나쯤 무너지지는 않았는가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런 날도 있는 거지 가을은 저만치서 슬그머니 손짓하며 오고 …
■ 여름 엽서 46 시인 주광일 혼탁한 여름, 대지 위에서 벌어지는 세상 일에 무심한 듯 침묵을 지켜오던 하늘이, 끝내 분노한 나머지 시커먼 구름의 등을 떠미는 순간,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낙비. 순식간에 불어난 빗물이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이곳 저곳 널려있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문인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쩌면 문인들인지 모릅니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풀잎 하나에도 마음을 주고, 늦은 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도 사연을 붙이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나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면 마음이 먼저 낮아진다.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몇 날 며칠 한 단어를 붙들고,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는 노시인의 모습을 볼 때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는 시를 짓는 것이 아…
■ 소나기, 하얀 그리움이 짙게 내리는 시인 青民 박철언 작은 수증기로 피어오른 그리움 새털구름으로 높이 날다가 양떼구름으로 사뿐 내려섰다가 뭉게구름으로 커지는 그리움의 무게 비구름 안개구름으로 머무르다가 공기보다 낮아진 밀도가 바닥 놓치니 마침내 지상…
■ 자주빛 사랑 시인 신계전 바람 부는 풀숲에 숨어 핀 초롱꽃 누구를 기다려 고개 숙였나 너 또한 나를 닮아 세월을 잃어 시린 가슴 이슬 맺혔나 밤마다 꿈속으로 몰래 찾아와 속삭이는 그대 목소리 가슴을 파고드네 꽃을 피우네 그리움이 눈물 짓네 그대는…
■ 여름엽서 45 시인 주광일 이틀 전 귀국 버스에 실려 아소산을 내려오며, 나는 감사한 마음 뿐이였습니다. 하기야 우리들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운 은혜이고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아소산에 머물렀던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푸른 하늘과 하얗게 …
신새벽 단국대학교 한문학 김상홍 명예교수님께서 보내오신 시경의 《采薇 ㅡ 6장》이다. ■ 《시경》의 以詩論時 《시경》 3백 5편 중에서 白眉로 평가받는 采薇의 제6 장 昔我往矣 옛적에 내가 군대 갈 때에 楊柳依依 수양버들 휘영청 푸르더니 念我來思…
■ 불이不二에서 핀 꽃 시인 김미형 물 위에 모습이나 물속에 비친 모습이나 불이에서 태어나 불이로 돌아간다 ■ 물 위의 꽃과 물 아래의 꽃 사이 ― 김미형 시인 디카시 「불이不二에서 핀 꽃」 에 깃든 불이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절집의 …
■ 말복을 보내며 시인 김유조 숨은 바람 겨우 한줌인데 땡볕을 밀어내고 세월의 등을 치니 벌써 가슴이 철렁하네 이날이면 밀린 방학 숙제와 못다 쓴 일기장이 그랬듯 지난 여름 흘린 땀은 헛된 증발이 아니라 뜨거운 햇살을 견뎌낸 증표이고 말복은 무슨 끝이…
■ 비움이 남긴 것 시인 공병영 비우고 나니 모든 게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조용히 들여다보니 남은 게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숨결, 덜 복잡한 생각. 원망 대신 피어난 감사. 두려움 대신 자리잡은 평화. 무언가를 얻기보다 잃지 …
■ 할머니의 등 청람 김왕식 배추 몇 포기 고추 한 바구니 깻잎 몇 단 앞에 저녁보다 먼저 굽은 등이 있다 새벽 찬 바닥 자식들 밥그릇 손주의 약봉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척추마다 한 칸씩 눌러앉았다 “오천 원에 두 단.” 목소리는 웃는데 등…